딸의 첫 브래지어 사주던 날

많은 엄마들이 늙어 갈수록 딸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다행히 내게도 두 아들놈 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막내딸이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중학교 2학년이 되는데, 몇주 전에 모녀가 함께 쇼핑을 하면서 예쁜 무늬가 그려진 브래지어를 몇개 사줬다. 여기 미국 여자 애들은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만 되어도 성숙한 애들을 많이 볼수 있어서, 딸의 친구들을 보면 도저히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벌써 4학년만 되가면, 남녀 학생들 사이에 여러가지 주의할 점들을 가르쳐 준다.

딸 애가 난생 처음 갖는 브래지어에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 올랐다. 우리가 어릴때는 요즘 처럼 보험제도가 잘 돼있어서 개인적으로 종합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건 아주 부자가 아닌 이상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고, 의료 시설도 좋지 않은 시대 였기 때문에, 그저 아프면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는게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체검사를 실시하곤 했었는데, 키와 몸무게를 재고, 치아 검사같은 아주 기본적 검사 외에, 손톱과 발톱, 머리에 이가 있는지 보는 위생검사도 했었다. 또 대변검사도 해서 회충, 촌충, 요충, 편충 등 기생충이 있으면, 구충제를 학교에서 선생님이 직접 보는 앞에서 먹게 하면, 아침도 못 먹고 온 가난한 애들은 그 독한 약에 견디지 못해서 구토를 하고 어지러워서 쓰러지곤 하는것도 보았었다. 그런데 그 때는 모두가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걸로 알았지만, 딸 애를 키우면서 새삼 옛날에 우리 세대가 했던 신체검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나는 다른 애들보다 키가 작고 성장도 빠른 편이 아니었지만 가난해서 학교에 늦게 들어오거나 다른 애들보다 성장이 빨라서 키도 크고 몸이 성숙한 여학생들은 벌써 5, 6학년 때부터 가슴이 나온 애들이 있었다. 그런 친구들은 항상 애들 놀림감이 되었고, 자기가 무슨 죄인인 양 항상 뒷자리에 앉았었고, 대체적으로 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신체검사를 하는 날은 남자와 여자애들 모두 똑 같이 팬티만 입고, 복도에 쭉 줄을 서서 키를 재고, 몸무게를 재고 했었는데, 가슴이 좀 나온 애들은 창피해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줄에 서 있으면 짓궂은 남학생들이 낄낄대며 웃었었는데, 그건 신체검사를 담당하는 남자 선생님들이 하는 행동에 비하면 아주 약과였다. 키를 재는 측정기에 올라서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는 여학생에게 능글 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막대기로 탁탁 치면서손 내려.” 하고 으름장을 주면 순진한 그 아이는 다들 쳐다보는 앞에서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어쩔수 없이 겨우 손을 내리고, 차렷 자세로 키를 재면 애들이 다 ! ” 하고 소리를 질렀던게 기억이 난다.

나는 큰 딸로 오빠, 언니가 없어서 생각하는 것도 어리고 tomboy (말괄량이, 왈가닥 소녀) 같아서 그때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사자인 그 친구들은 얼마나 큰 정신적 상처를 입었을까 상상하니 딸을 가진 엄마로서 마음이 아파왔다. 허울좋은 신체검사라는 이름으로 겨우 키와 몸무게 정도를 재면서 엄청나게 비인간적이고, 미개한 성추행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쳐온다. 신문, TV, 인터넷등의 메스컴을 통해서 듣는 어린 소녀들이 당하는 상상을 초월한 성폭력 기사들을 읽으면서 동생들에게 여자 조카들 (요즘은 남자 애들도 조심해야 하는 세상인것 같다) 항상 조심하게 키우라고 강조에 강조를 하는데, 결국 모든 면에서 morality (도덕성, 윤리성) 가 사라져서 발생하는 현상인것 같아 무척 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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