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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동문서답

큰 아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가 잡초와의 전쟁을 주제로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고 했더니 잡채와의 전쟁이라구요?” 하는게 아닌가?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잡채가 아니고 잡초하고 다시 강조하며 말했더니 잡초가 뭐드라?” 하는데 할 말을 잊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에 왔지만, 엄마의 극성으로 6학년 국어책까지 공부를 시켜서, 비록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왔지만, 읽고 말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대학 4년 동안 집을 떠난 날이 많은데다 직장 때문에 거의 식구들과 자주 한국말을 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한자뜻을 가진 단어들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면서 아들의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어느날 한국에서 오신 엄마도 뵙고 미국도 구경할 겸, 캐나다에 유학 온 조카가 우리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새로운 한국 소식도 듣고 오래된 추억 얘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옛날에는 초가집들이 많아서 집에 벼룩도 많고, 학생들의 머리에 이도 많아서, 학교에서 이검사도 하고 DDT라는 약도 몸에 뿌리는 시대를 살았지만, 아무 탈 없이 잘 지낸다는 말을 하는 도중에, 큰 아들이 대뜸 벼룩이 왜 뛰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네가 어렸을때는 이도 없었고, 벼룩은 더 더욱 보기도 힘들었는데 어떻게 너가 벼룩을 아니? 하고 물었더니 계속 자기가 잘 안다면서 벼룩은 뛰는게 아니고 뚝 떨어진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우리는 너무 의아해 하며, 빈대는 톡톡 튀고, 벼룩은 팔짝 팔짝 뛴다면서 서로 설전을 벌이는데 갑자기 큰아들이 답답했는지 영어로 어떻게 thunder (thunderbolt, 벼락, 번개)가 뛰나요? 떨어지죠.” 하는게 아닌가?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엄마, 조카, 그리고 나는 동시에 어느새 벼룩이 벼락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니 하면서 배꼽 빠질 정도로 웃었다그렇게 웃고있는 우리를 멀끔히 쳐다만 보고 있는 아들에게 얘는 이제까지 동문서답 (東問西答)을 했네.” 했더니 아들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동문서답만큼은 내가 잘 알아요.” 하는 거였다. 그래서 “잘 아는게 뭔데?” 하고 되 물으니, 큰아들이 하는 말 동문서답허준이가 쓴 책이쟎아요.” 그 순간 우리 모두는 거의 기절할 정도로 마루 위에 뒹굴면서 웃고 또 웃고 했었다.

 

당시에 한국 TV에서 드라마 허준이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었고, 우리 식구들도 한국 비디오 가게에서 매주 마다 빌려다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그 허준이 불쌍한 민초들을 위해서 병을 고쳐주는 장면이,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아들에게는 아주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는지, 그 허준이라는 사람이 마치 예수님 같네요 까지 말하곤 했었다. 그래서 허준이가 지은 동의보감 (東醫寶鑑)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어려운 한글 단어들에 더욱 서툴은 아래 두 녀석은 어려워얼려, ‘기특해기도해등등 많은 단어들을 잘못 이해하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애들 못지않게 대화를 하는 도중에 잘못 알아듣는 영어 단어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우리 엄마는 미주 라디오 방송에서 ‘emission test (에미션 테스트-자동차 배기가스검사)를 공짜로 해준다는 걸 임신 테스트를 공짜로 해준다는 소리로 듣기도 했었다.

 

내가 이중언어를 쓰면서 나름대로 내린 견론은, 맨 처음 머리에 입력된 영어 단어와 나중에 배운 영어가 함께 짬뽕이 돼서 입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 적은 놓은 것과 같이, 완전히 웃기는 단어로 재 탄생하게 되는데, 큰 아들의 에피소드에 버금갈 정도로 웃기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영화 E.T.에 나왔던 미국 여배우 Drew Barrymore Berry Drewmore, 미국 틴에이저 여배우 Miley Cyrus Ciley Myrus, American Idol의 참가자 Danny Gokey Danny Gecko, 인기 TV 프로인 American Gladiators American Alligators로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게 되는데, 아마도 strawberry, blueberry, silo, alligator 라는 단어들을 먼저 접했기 때문이고, 애완용 leopard gecko (도마뱀 일종)를 돌보면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실수를 하는게 아닌가 싶다. 허수아비라는 단어 scarecrow를 crow keeper라고 하거나 fish out of water를 fish out of bucket 이라고 까지 했었으니까. 아무튼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 임에는 틀림 없지만 단어와 문장을 자주 입에 오르내리면서 익숙하게 만들면, 어느 정도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수형, 복수형

영어로 말할 때 쉽게 실수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단수형과 복수형의 단어를 정확하게 구별해서 써야 되는데  생각처럼 쉽게 입에서 나오지가 않는다. 한국어 처럼 단순히 단어 뒤에 ‘…만 붙이는 것 처럼, 영어도 복잡한 복수형이 아닌 이상, 단어 뒤에 ‘s’ 만 붙이는게 왜 어려울까 의아해 할 수 있다. knife knives, foot feet 처럼 단어 자체가 변할 때는 오히려 실수를 자주 하지 않지만, 간단히 ‘s’ 만 뒤에 붙여서 복수가 되는 단어들을 사용할 때는 나도 모르게 ‘s’ 없이 말할 때가 많다. 한국어로 사탕을 샀니?’, ‘사과를 사거라.’, ‘종이를 사야지.’ 하고 말을 하지 사탕들을 샀니?’ ‘사과들을 사거라.’ ‘종이들을 사야지.’ 하고 을 붙여서 말을 하는 경우는, 정확하게 갯수나 량을 강조 할 때 빼고는 드물다. 그래서 영어를 쓸때, candies (캔디즈~), apples (애플스~), papers (페이퍼스~) 하면서 단어 끝까지 정확히 ‘s’ 발음을 해야하는데, 잘 염두해 두지 않으면 ‘s’를 가끔 잊고 말을 하게 된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건, 돈에 대해서는 한푼의 양보도 없고, 절대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는, 철저한 자본주의 문화가 언어에도 영향을 줘서 한개냐, 두개 이상이냐를 정확히 구분해서 쓰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한국에서 재래 시장같은 곳을 가면, 마음씨 좋은 상점 아줌마들이 인상이 좋고 말도 이쁘게 하면 덤으로 더 받을 수 있고, 물건값을 안 깎아주면 에누리가 없다고 하고, 됫박으로 파는 물건을 살 때도 한 줌, 혹은 수북히 넣어달라든지, 설이나 제사가 끝나면 주인이 먹을 음식이 부족해도 손님들에겐 듬뿍 싸주는 정 많은 한국의 문화가 정확히 갯수를 따지는 걸 야박하고 인정머리 없다고 보기 때문에, 정확하게 단수와 복수 개념이 크게 강조되지 않는 이유도 있을것이다.

 

내가 즐겨보는 경제 전문 채널인 CNBC의 일반인들을 위한 경제상담을 들으면서 놀라는 것은 대학을 졸업한 자식들이 독립을 안하고 부모와 한 집에서 살게 되면 방세를 받고 (당연히 부모가 생활비를 대주는 것은 없고), 은퇴한 부모와 함께 살게되면 부모에게서 방세나 전기, 수도같은 관리비를 받고, 부부 사이에도 결혼 전에 개인 재산과 관련된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그런 상담 프로들을 보면서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생각하고 쓰는지를 알게 된다. 게다가 1달러 미만인 백분의 일 단위의 센트 (cent)까지 상품 가격표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한국 물건값에 동그라미가 몇개 들어간 숫자들과 큰 차이를 느끼게 된다. 아들 친구들이 놀러 왔을때 가끔 피자를 시켜주면 어떤 애들은 자기가 먹을 피자 몇조각 값를 내게 지불하려는 애들도 있고, 회사에서 우표 한장을 빌리면서 당연히 44센트를 갚는다. 그러나 여기도 다 사람사는 곳이라 치매 걸린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돌보는 자식들도 많이 있고엄청난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부자들도 많지만, 돈에 관한 개념은 기본적으로 서로 많이 다른 것 같다.

 

수퍼마켓을 가서 똑같은 물건 20개를 사면 계산원이 하나씩 20번 스캔을 한다거나, 아주 간단한 뺄셈, 덧셈도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으면 계산을 못하는 점원들이 많지만, 고등학생때 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고 세금 보고도 스스로 하면서 돈이 무엇인지 실지 몸으로 배우고 경험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학교에서 인기있는 게임이나 스포츠카드들을 서로 돈으로 거래하기도 하고 (원칙적으로 학교에서는 상거래를 못하게 함), 용돈을 벌기 위해서 동네 어귀에서 레몬 쥬스 (lemonade)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이제 동네 곳곳의 수영장들이 개장을 해서, 인명구조 면허 (lifeguard license)를 딴 고등학생들이 뙤약볕에서 일을 하거나, 여름방학을 맞아 젊은 남녀 대학생들이 식당이나 수퍼마켓에서 일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데, 나는 식당에서 특별히 대학생 웨이터의 서비스를 받게 되면, 기특한 마음에 팁을 좀 더 주고 나오게 된다.

Fact (사실) 와 Opinion (의견)

인터넷이 발달 되면서 어떠한 정보들도 거의 다 얻을 수 있고, 신문구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서 중요한 사건, 사고, 큰 이슈화된 기사들을 읽을 수 있어서, 나는 미국 뉴스 외에도 한국에서 주로 봤던 신문들의 인터넷 사이트를 수시로 방문한다. 오랫동안 두 나라의 신문 기사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 신문들의 기사들은 제목부터가 너무 감정적이고 사실전달 능력이 부족하며, 가장 문제점은 기사를 쓰는 기자가 fact (사실) opinion (의견, 견해) 을 철저하게 구별하지 않고 개인 칼럼 처럼 기사를 쓴다는 것이다. 기자의 역할은 일어난 사건, 사고에 대해서 있는 사실만을 정확하고 간단 명료하게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제일의 의무인데, 기사가 아닌 칼럼이나 비평이 아닌가 혼동을 일으키는 기사가 너무 많다. 당연히 신문에는 칼럼 란 따로 있고 기사 란이 따로 있는데 말이다.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인터넷 신문, 방송도 늘어났고 지방 자치제가 시작되면서 각 지방의 미디어 매체들도 생겨났고, 정치 성향에 따라 보수, 진보를 자처하는 신문들도 많이 생겼다. 소위 진보 좌파 성향의 신문들은 자기들이 바라는 목적대로 붓이 가게 돼있기 때문에 fact opinion을 굳이 따질 필요 조차 없으나, 많은 독자를 갖고 있고, 역사가 오래된 주요 신문들도 요즘은 그런 신생 신문들이나 삼류 잡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분석해 볼때, 아마도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젊은 기자들이 많아지다 보니 사실을 보고 분석하는 능력도 떨어지고, 많은 신문이 생기다 보니 전반적으로 기자들의 질도 전보다 많이 떨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신문기사 제목들을 열거해 보았는데, 사실 그대로를 충실히 전달하기 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데 목적이 있는것 같다. 제목이 이렇게 독자들에게 선입감 부터 준다면 어떻게 그 기사가 정확한 사실을 전달했다고 독자들이 믿을 수 있겠는가?  

신문 제목들의 예 ()—이치로 버스코리아타운 돌며 한인들 자극?’; 아직도 못 찾아간 김연아 졸업앨범, ‘수상한데?’; 백골에 약 처방 한 이탈리아 의사들 맞아?; “헬기타고 서울 보라” MB 말에 젊은이들 실소; 강남行 지원했던 경관 “괜히 찍히기만 했네”; 잘나가던 한의학, 허약해졌나.; “또 한일전…차라리 가위바위보 하자“; “경주 △△△ 지지율 더 높아소문 확인되면…; 당당한 캐나다쇠고기 수입안하면 한국 제소“; 남상국사장 한강 투신후에도 절제못한 봉하대군; ‘뚱뚱남서럽게 한 지하철좌석, 9호선 본받아라; “계약위반시…대형기획사가 만든 몰상식 조항

게다가 독자가 많지 않은 인터넷신문들은 가장자리에 야한 여성사진이나 색깔이 강한 많은 그림이나 선전들을 한 페이지에 집어 넣어서, 가끔 회사에서 한국 뉴스를 보려고 열었다가 오해받는 경우도 있어서 정말 인터넷 강국의 신문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LG Xenon cell phone (휴대폰) 이나 삼성 폰같이 한국 휴대폰들의 인기가 대단하고, 한국 가전제품까지 주요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의 매스 미디어 (mass media) 들은 언제면 fact opinion을 구별하는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말 잘하는 사람들

항상 내가 여기서 놀라는 것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기 표현을 너무나 조리있게 잘 말한다는 것이다. CNN이나 여러 주요 방송들의 대담프로를 보면, 여러명이 제각각 자기 주장들을 논리있게 펼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 직원들이 자기 의견을 조목 조목 아무 꺼리낌없이 잘 말하는 걸 보면서, 감탄을 하게 되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저런 말을 어떻게 감히 할수 있을까 놀라고, 또 그런 말을 해도 참 잘 경청 한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란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 사람들은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거침없이 술술 말을 할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선 어릴때 부터 말을 자유롭게 할수 있는 환경을 가정에서 부터 마련해 줬다는 것이다. 내가 앞서서 언어 문화에 대해서 썼던것 처럼,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상대방을 “you”라고 하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끔씩 외국 영화를 보면 어린 손자와 할아버지, 혹은 부모와 자녀들이 마치 같은 나이의 친구들 처럼 얘기 하는 장면이 나오는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인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많이 하는 ‘show & tell’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애들에게 설명해주면서 자랑할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그러나 동물이나 위험한 물건은 금지된다.) 역시 여러 사람 앞에서 얘기를 잘 할수 있게 훈련 시키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 인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제일 큰 이유는 누가 어떠한 주장을 펼치든 명령 체계로 된 군대가 아닌 이상, 당사자의 마음에 들던지, 안 들던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 때문에, 나이가 많거나 그 쪽 숫자가 더 많다고 윽박지르며 중단시키거나 야유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보면 선천적으로 명랑해서 말도 잘 했을 것 같은데, 여러 사람 앞에만 서면 무릎부터 떨리기 시작하고,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머리가 멍멍 해진다. 머리속에는 말하고 싶은게 많지만, 입으로 조리있게 나오질 않는다. 내가 나를 진단하기에 말을 하기에 앞서서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인것 같다. 우리가 어릴때는 사람들 앞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자기 생각을 좀 주장 할라 치면, ‘좀 점잖게 있어라’, ‘예의를 지켜라’, ‘철 좀 들어라’, ‘어른들 앞에서 까불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라’, ‘아무리 입이 가지러워도 좀 참고 조용해라’, ‘잘 난척 하지 마라’,  여자애가 좀 조용하고 차분해야지’, ‘체면 좀 차려라’, ‘딴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겠니등등 말을 아주 잘하는게 버릇없는 것처럼 여겨졌었다. 그래서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눅부터 들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머리에 그리게 되니 당연히 말을 잘 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잘하라고 보내는 웅변학원들도 하나같이 자기가 생각하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말을 하게끔 가르치기 보다, 쓰여져 있는 글을 외워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의 높낮이를 잘 조절해서 소리지르면 잘 한다고 박수를 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선거에 나오는 한국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으면, 초등학생들의 웅변만도 못 한걸 느낀다.

당연히 애들이 습관적으로 남을 비방하거나 상처주는 말을 하면 고쳐 줘야 하겠지만,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며 합리적이고 논리 정연하게 말을 잘 하는 자식이 있다면, 아무리 부모의 의견이 그것과 달라도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들어줄려고 노력한다면 아이의 연설 잘 하는 재능이 빛을 볼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젊은 연예인들이나 대담 프로 진행자들이 우리 때와는 전혀 다르게 아주 말을 재미있게 잘 하는걸 볼 수 있고, 예전의 웅변학원과는 다른 방식의 스피치 클래스 (speech class) 들도 생겨서 각본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걸 가르치는 것같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과 말,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가 되지않고 진실성이 결여된다면, 아무리 말을 잘해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 결국 그 사람을 신뢰 할수가 없을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만약에 미국에서도 한국 처럼 뚱뚱한 사람이 길을 지나갈때, 야유나 조소를 보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미국 사람들의 비만율이 쬐끔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남녀의 호칭

 아직도 영어를 쓰면서 ‘She’ 나 ‘He’ 같이 성별을 지칭하는 말 들이 자연스럽게 술술 나오질 않는다. 나 처럼 나이가 들어서 미국에 온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데, 대화 도중에 내가 어떤 여자에 대해서 말하면서, 무의식중에 “he”로 쓰고 있으면 상대방이 종종 고쳐 주곤 한다.

한국에서는‘그 여자’, ‘그 남자’ 라고 반드시 지적을 하지 않아도그애‘, ’엄마‘, ‘아빠‘, ‘아줌마‘, ‘아저씨‘, ‘오빠’, ‘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니면 ‘그 사람’ 등등 호칭을 구별해서 계속 그 호칭으로 대화를 할 수있지만 , 영어는 만약에 ‘the mother’ 가 대화중에 한번 나오면 그 뒤로는 보통 ’she’ 나 ‘her’ 로 대치하고 대화를 한다. 그래서 잘 의식하지 않고 영어를 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분명히 처음에는 그 집 아빠 얘기로 시작했는데 그 집 엄마 얘기로 완전히 뒤바뀌어서 대화가 끝이 날 수 있으니까.

이런 언어문화적인 이유 때문인지 남녀평등이 법적으로 잘 돼있고, 스포츠 분야에서도 체격조건이 좋은 여자들이 남자들 뺨칠 정도로 잘하는 반면에, 또 많은 여자들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섹시하게 보일려고 무지 노력을 하고, 남자애들은 더욱 남자 다워질려고 중학생만 되면 근육을 키운다고 유난 떠는 것을 보면 참 의아해진다. 한 예로 한국에서는 남자애들 운동화에 로보트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더라도 빨간색이 들어간 운동화도 많이 신는데, 만약에 여기서 그런 빨간색, 핑크색등의 신발을 남자애가 신고 학교를 가면 놀림을 받고 심지어는 게이라는 말도 들을 수 있다는데 그 이유가 어느 정도는 언어적인 배경에 기인하는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무튼 Native American 처럼 말하려고 꿈꾸는 것은 내게는 영원한 숙제임에 틀림이 없다.

형제끼리의 호칭

앞서 내가 올린 호칭의 차이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에서는 이름을 부르는게 일반적이라고 해도 형제들 사이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할 때야 나이에 상관 없이 자신의 직위와 자격을 갖고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정에서 만큼은 이나 언니같은 호칭을 형제들끼리 쓰는게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내 둘째 아들이 습관적으로 계속 형의 이름 부르는 것을 보고 내가 매번 이라고 부르라고 고쳐주다 보니 지금은 이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다행히 첫째와 둘째사이가 9년이나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큰 애가 대학교를 가면서 동생을 다루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으며 (아무리 나이 차이가 많아도 자주 싸웠었다) 그때부터 둘째도 형이 큰 어른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둘째와 세째는 한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아서인지 도무지 작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이유야 오빠처럼 굴지 않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을 방해하고, 잔심부름이나 시키는데 무슨 오빠라는 것이다. 반대로 둘째 입장에서는  자기가 ‘형’ 이라고 부르는 것 처럼 세째가 오빠라고 부르면 심술을 부리지 않겠다고 하고. 내가 보기에 막내딸이 절대 작은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커 갈것 같다. 내가 하라고 하면 마지못해서 자아아근 오오빠~~~” 라고 하지만.

호칭의 차이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되고, 존칭어 표현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를 할때 몸과 손, 풍부한 얼굴 표정으로 대화를 하는 미국사람들에게서, 특히 손으로 상대방을 가리키면서 ‘You’ 라고 지칭하는 호칭에 당황하거나 기분이 나빠진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리고 특히 자식들이 영어로 부모에게 ‘You’ 라고 할때 아무 느낌 없이 듣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여기서는 단순히 상대방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당신이 뭔데.” “당신 잘났어.” 등등 당신이라는 늬앙스가 완전히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주 사무적인 사이가 아닌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상대방 이름을 부르는데 이런 점 또한 적응이 쉽지 않은 문제 중의 하나이며, 아무리 오래 미국에 살고 있어도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를 보면 ‘You’ 라는 호칭에는 금방 적응을 했지만 이름을 부르것 만큼은 같은 동창들을 제외하고는 할수가 없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열명 안밖의 한국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다른 직원들을 부르거나 이메일을 보낼때는 모두 그들의 이름을 사용하고, 그게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 직원들에게는 ‘Mr. Park’ 이나 ’Mrs. Lee’ 등으로 쓰거나 한글로 선생님호칭을 추가한다. (참고로 여기서는 아주 친하지 않으면 결혼같은 사생활을 잘 모르기 때문에 보통 여성들에게는 Miss Mrs. 대신에 Ms.를 많이 쓴다)

 

어느날 회사에서 한 직원의 생일파티를 할때 한국 직원이 함께 있었는데 대화들을 나누면서 계속 ‘Mrs. Mun’, ‘Mr. Park’ 하면서 부르니까 한사람이 의아해 하면서 왜 서로를 그렇게 부르냐고 물어보는데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게 한국 문화에서는 예의에 어긋난다고 하니 놀라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이민 온 나이 많으신 어른들은 심지어 Mr. Mrs. 라는 호칭 조차 건방지다고 듣기 싫어하신다.

 

그러나 복도,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한국사람끼리 만날때 손을 흔들면서 “Hi”, “How are you!” 하는 인사 대신에 안녕하세요하면서 고개를 숙이면서 하는 인사법은 여기서도 많이 알려져서 크게 의아해 하지는 않지만 호칭 만큼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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