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의 동문서답

큰 아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가 잡초와의 전쟁을 주제로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고 했더니 잡채와의 전쟁이라구요?” 하는게 아닌가?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잡채가 아니고 잡초하고 다시 강조하며 말했더니 잡초가 뭐드라?” 하는데 할 말을 잊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에 왔지만, 엄마의 극성으로 6학년 국어책까지 공부를 시켜서, 비록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왔지만, 읽고 말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대학 4년 동안 집을 떠난 날이 많은데다 직장 때문에 거의 식구들과 자주 한국말을 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한자뜻을 가진 단어들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면서 아들의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어느날 한국에서 오신 엄마도 뵙고 미국도 구경할 겸, 캐나다에 유학 온 조카가 우리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새로운 한국 소식도 듣고 오래된 추억 얘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옛날에는 초가집들이 많아서 집에 벼룩도 많고, 학생들의 머리에 이도 많아서, 학교에서 이검사도 하고 DDT라는 약도 몸에 뿌리는 시대를 살았지만, 아무 탈 없이 잘 지낸다는 말을 하는 도중에, 큰 아들이 대뜸 벼룩이 왜 뛰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네가 어렸을때는 이도 없었고, 벼룩은 더 더욱 보기도 힘들었는데 어떻게 너가 벼룩을 아니? 하고 물었더니 계속 자기가 잘 안다면서 벼룩은 뛰는게 아니고 뚝 떨어진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우리는 너무 의아해 하며, 빈대는 톡톡 튀고, 벼룩은 팔짝 팔짝 뛴다면서 서로 설전을 벌이는데 갑자기 큰아들이 답답했는지 영어로 어떻게 thunder (thunderbolt, 벼락, 번개)가 뛰나요? 떨어지죠.” 하는게 아닌가?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엄마, 조카, 그리고 나는 동시에 어느새 벼룩이 벼락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니 하면서 배꼽 빠질 정도로 웃었다그렇게 웃고있는 우리를 멀끔히 쳐다만 보고 있는 아들에게 얘는 이제까지 동문서답 (東問西答)을 했네.” 했더니 아들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동문서답만큼은 내가 잘 알아요.” 하는 거였다. 그래서 “잘 아는게 뭔데?” 하고 되 물으니, 큰아들이 하는 말 동문서답허준이가 쓴 책이쟎아요.” 그 순간 우리 모두는 거의 기절할 정도로 마루 위에 뒹굴면서 웃고 또 웃고 했었다.

 

당시에 한국 TV에서 드라마 허준이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었고, 우리 식구들도 한국 비디오 가게에서 매주 마다 빌려다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그 허준이 불쌍한 민초들을 위해서 병을 고쳐주는 장면이,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아들에게는 아주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는지, 그 허준이라는 사람이 마치 예수님 같네요 까지 말하곤 했었다. 그래서 허준이가 지은 동의보감 (東醫寶鑑)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어려운 한글 단어들에 더욱 서툴은 아래 두 녀석은 어려워얼려, ‘기특해기도해등등 많은 단어들을 잘못 이해하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애들 못지않게 대화를 하는 도중에 잘못 알아듣는 영어 단어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우리 엄마는 미주 라디오 방송에서 ‘emission test (에미션 테스트-자동차 배기가스검사)를 공짜로 해준다는 걸 임신 테스트를 공짜로 해준다는 소리로 듣기도 했었다.

 

내가 이중언어를 쓰면서 나름대로 내린 견론은, 맨 처음 머리에 입력된 영어 단어와 나중에 배운 영어가 함께 짬뽕이 돼서 입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 적은 놓은 것과 같이, 완전히 웃기는 단어로 재 탄생하게 되는데, 큰 아들의 에피소드에 버금갈 정도로 웃기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영화 E.T.에 나왔던 미국 여배우 Drew Barrymore Berry Drewmore, 미국 틴에이저 여배우 Miley Cyrus Ciley Myrus, American Idol의 참가자 Danny Gokey Danny Gecko, 인기 TV 프로인 American Gladiators American Alligators로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게 되는데, 아마도 strawberry, blueberry, silo, alligator 라는 단어들을 먼저 접했기 때문이고, 애완용 leopard gecko (도마뱀 일종)를 돌보면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실수를 하는게 아닌가 싶다. 허수아비라는 단어 scarecrow를 crow keeper라고 하거나 fish out of water를 fish out of bucket 이라고 까지 했었으니까. 아무튼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 임에는 틀림 없지만 단어와 문장을 자주 입에 오르내리면서 익숙하게 만들면, 어느 정도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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