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Family

한국의 나영이 사건을 보면서

요즘 한국의 모든 방송, 신문 매체들이 어린 초등학교 소녀의 성폭력 사건의 판결을 두고 아주 시끄럽다. 이렇게 난리 법석을 떨다가, 항상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조용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이번 사건을 접할 때, 허술한 법적, 사회적 제재 시스템에 실망과 동시에 분노를 하게 된다. 한국의 동생들에게 전화를 할 때 마다, 여자 조카들이 어려서 항상 성폭력에 대한 주의를 철저히 하라고 자주 당부를 하게 되는데, 크게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아서 안타까웠었다. 아마도 이런 사건이 아주 많이 일어나고 있겠지만 매스컴에서 수시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가뭄에 콩나 듯 일어나는 일이고, 그저 남에게나 일어나는 일로 인식 돼 있지 않나 싶다.

미국의 영화나 TV 드라마들을 보면 처음 만나자 마자, 서로 좋아서 잠자리를 함께하는 내용이 수시로 나오는데, 한국도 성 ()에 대해서 많이 개방이 됐는지, 여러 연속극들이 불륜을 주제로 다루거나 베드신들이 아무렇지 않게 온 가족들이 시청하는 시간대에 버젓이 등장하는 걸 보면, 굉장이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한 때 아주 인기 절정이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삼순이’ 에서, 삼순이 언니가 주방장 남자와 자연스레 모텔에 가는 장면이 나오는 걸 보면서 너무 놀라하니까, 아주 고리타분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서구의 성개방 문화가 들어오면서, 동시에 미국, 유럽등 에서 시행하는 성폭력 범죄 처리법과 상응한 국내법을 함께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나영이 사건을 저지른 범인에 대한 응징이 솜방망이 처럼 되는게 아닌가 싶다. 여기서는 남녀 고등학생들이 서로 껴안고 키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만약에 어느 한 쪽이 16살 미만이고 나중에 마음이 변해서 자기가 원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강제로 껴 안았다고 학교 사무실에 보고가 들어가면, 바로 학교 위원회에서 조사에 들어가며, 사실로 확인됨과 동시에 바로 법 집행에 들어간다. 대학 기숙사에서 많은 남녀 학생들이 우리 같은 기성세대가 놀랄 정도로 개방적인 성관계가 이루어지지만, 만약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당장 법적 조치와 함께 그런 뉴스거리를 찾는 신문과 방송기자들에게는 엄청난 기사거리가 되면서, 얼굴은 물론이고 자세한 신상정보, 가족관계, 옛날 과거사 까지 완전히 드러나게 된다. 유신이후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유와 인권이 많이 개선이 됐지만, 아직까지 전형적이고 권위적인 한국 남성의 틀을 벗어버리지 못한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이기적으로 자유와 인권을 잘못 이해한 결과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남의 자유를 짓밟은 사람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든가, 남의 인권을 처참하게 유린한 사람의 인권을 생각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모순된 이중잣대를 들이대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사례를 많이 보게된다. 간단한 한 예가 바로 범죄인들의 얼굴 공개를 하지 않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름과 동시에 그 사람은 바로 법적인 제재에 들어가고, 그때부터 그 사람의 자유는 법의 통제 하에 제한 받게 되는게 바로 자유의 한계인 것을 아주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것 같고, 바로 그게 법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이며 역할인 것이며,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내가 수시로 한국 엄마, 특히 딸을 가진 엄마들을 만나면 항상 알려주는 웹사이트가 바로 이거다.

http://www.familywatchdog.us

처음 이 웹사이트를 보고 얼마나 탄복했는지 모른다. 미국 전역에 사는 성추행자들의 집과 그들이 일하는 직장의 주소와 얼굴 사진, 기타 정보를 다 보여주고 있는데, 다행이 현재 내가 사는 근처에는 그런 범죄자들이 살지 않지만, 옛날 살았던 집에는 한 성추행범이 내가 이사간 후 인접한 이웃집으로 이사를 온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에 등록된 사람들은 인종별, 나이별, 성별로 아주 다양함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그리고 웬만한 수의 직원을 다루는 회사에서는 거의 의무적으로 신입사원 교육에서나 전 직원을 대상으로Sexual Harassment Awareness and Prevention for Employee Training (성추행 예방과 방지 교육) Ethics Training (윤리 교육) 을 하기 때문에, 만약에 어느 직원이 반갑다고 서로 인사를 하면서 상대방이 받아들이기에 민망할 정도로 몸을 쓰다듬거나, 과한 행동을 하게 되면, 인사과에 보고를 할 수 있으며, 담당자는 바로 조사에 들어가고 문제가 확인 되면 그 직원은 불명예 퇴직을 해야 한다. 인터넷의 발달과 동시에 한국이 IT , 정보통신 (Information Technology) 강국을 자처하면서 거의 모든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고, 여러가지 정보를 쉽게 얻을수 있는 장점을 지닌 동시에, 비겁하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모든 곳에 나쁜것을 퍼뜨릴 수 있는 두 얼굴을 가진 특수성으로 인해서, 남을 뒤에서 비방하고, 심지어는 댓글로 상처를 받아 자살하고, 점점 사회를 악으로 물들이는 현실에서, 어서 빨리 한국의 정치와 법을 공부하는 현명한 이들이, 어린이들을 이런 범죄에서 보호하는 강력한 법을 만들어야 할것이다.

에드워드 케네디의 장례식

내가 어렸을 적에 주위 사람들이 미국 대통령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John F. Kennedy (존 케네디)가 암살을 당했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미국 정치에 관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케네디 가문이 아주 대단한 반면, 형제들이 암살 당하고, 사고로 죽었다는 걸 알고 참 불행하고 안 된 집안이구나 하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서 케네디 가문의 막내 아들인 에드워드 케네디 (Edward Kennedy 혹은 Ted Kenneday)의 장례식을 보고, TV에서 나오는 케네디가의 다큐멘터리를 보니, 명성 그대로 대단한 집안 이었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장례식을 보면서 나는 그 집안의 막강한 정치적 파워나 엄청난 재산가라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반면에, 그 장례식에 참가한 가족 관계를 유심히 보면서 놀란 점이 더 컸다.

케네디가 60세가 다 되서 재혼한 부인이 장례식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 부인의 전 남편 아들 들이 케네디 의원의 친 아들들과 함께 장례를 주관하고, 친딸, 아들들과 함께 서서 조문 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제일 앞 줄에서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다니는 사진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놀랐는데, 기사에 나온 사진 속 인물들을 설명 할 때, 케네디의 Stepson, 누구, 누구 하면서 케네디와는 성 ()이 달라도 정식 아들로 인정되고, 또한 그게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받아 들여 진다는데 대해, 또 한번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혼을 한 첫째 부인은 아무런 법적인 권한이 없어서 인지 장례미사 중이나 매스컴에 얼굴이 자주 나오거나 거론되지 않았고, 마치 제 3자 같았는데, 단지 호기심에 가득찬 독자들을 위해서 몇 장의 사진을 올려 놓고 있었다. 내가 예전에 한국 드라마중에서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성장한 딸의 결혼을 앞두고, 키워 준 양 어머니를 결혼식 앞자리에 앉게 하느냐, 낳아 준 엄마를 앉게 하는냐로 가족이 울고 불고, 싸우고, 가출하면서 질질 끄는 드라마를 보면서 핏줄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았다.

보통 여기서는 일반 이력서나 서류에는 성별, 나이, 가족관계를 쓰지 않지만, 정부에서 요구하는 중요한 서류를 작정할 때는 상세한 가족 관계를 기입해야 되는데, 그 때 마다 느끼는 것은 한국 처럼 부모, , 형제, 자매를 적는 난 만 있는게 아니다. 배우자 (Wife & Husband), 전남편, 전처 (Ex-husband & Ex-wife), 친부모 (Mother & Father), 양부모 (Stepmother & Stepfatehr), 시부모 혹은 장인, 장모 (Father-in-law & Mother-in-law), 수양부모 (Foster parent), 자식 (Child – 정식으로 입양된 아이는 입양아-adoped child 라고 하지 않고 정식 자식으로 친다), 양아들, (Stepdaughter & Stepson), 형제, 자매 (Brother & Sister), 이복형제, 자매 (Stepbrother & Stepsister, Half-brother & Half-sister), 게다가 법적 후견인 (Guardian) 까지도 가족관계를 적는 난에 있는 것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이렇게 우리가 이복형제, 배 다른 형제, 계모, 계부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공개 석상에서 잘 쓰려고 하지 않는데 반해, 미국 얘들은 자기 이복형제나 양부모를 일컫을 때 자연스레 Stepfather는 이렇고 저렇고…” “Stepsister 는 너무 이렇고…” 라고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하는 걸 볼때  마다 참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 하고 느꼈었지만, 이번 에드워드 케네디의 장례식을 보면서, 다시 한번 엄청난 문화 차이를 실감하게 되었다.

생일 파티 (2)

내게 가장 생각나는 내 생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2002년 회사에서 가졌던 생일 파티다. 그 날은 아침부터 이것 저것 마쳐야 할 스케줄이 있었는데, 업무 이메일들 중에는 오후 몇시에 회의가 있으니 아래 층 회의실로 오라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나는 부지런히 다른 일들을 마치고 수첩과 펜을 챙겨서, 항상 그러하듯이 영어 실수를 해서 창피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긴장된 마음으로 정확한 시간에 회의실로 들어갔다.

“Surprise!” “ Happy birthday! Agatha”

문을 열고 막 회의실로 들어가는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다양한 색깔의 풍선들로 장식된 테이블 위에, 큰 직사각형의 생일 케잌과 이쁜 냅킨과 접시가 놓여있고, 많은 회사 직원들이 회의실을 쫙 둘러싸고 있는게 아닌가? “Oh! My goodness.”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고, 빨개진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Thank you.”만 연발했다. 종종 다른 직원들의 생일파티에 참석을 해서 축하해 준 적은 있었지만, 내가 그런 파티를 갖게 되리 라곤 상상조차도 못했고, 기대도 하지 않았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서 참석해주고, 축하해 줬던 순간을 아직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젊고 늘씬해서 호감을 주는 스타일도 아니고, 영어도 어눌하게 하는, 일명 한국에서는 아줌마라고 불릴 내게, 그런 즐거운 생일 파티를 열어준 그 상사에게 아직도 고마움을 느낀다. 게다가 많은 직원들이 덕담을 적어 준 카드도 있었는데, 어디에다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는게 아쉽다.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이 애를 낳음과 동시에 이름이 ‘누구 엄마’로 변하고, 남편이 아주 자상하고 꼼꼼하게 가족 행사를 챙기지 않는 한, 주부의 생일은 종종 애들과 남편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특히 내 생일은 2월이라서 설날 연휴와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시댁에 설을 쇠러 가면, 내 생일은 당연히 실종되곤 했었다. 처음에는 무지 섭섭했지만, 이제는 아예 기대 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내 생일을 즐긴다.

당시 나는 모든 업무 스타일, 언어, 문화가 다른 전형적인 미국 회사에서, 하루 하루를 도전하는 마음으로 (오히려 투쟁이라는 단어가 더 가까울것 같다) 긴장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부하직원을 위해서 베풀어 준 생일 파티가 내게는 엄청난 자신감과 의욕을 불어 넣어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나의 블로그 애완 동물 (3)에서 언급했던, 자신의 greyhound (그레이 하운드) 개가 죽어서 사무실에서 슬피 울던 여자 상사였는데, 오십이 넘은 마음이 따뜻하고, 가난한 멕시코 이민자들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남을 잘 배려하는 큰 언니같은 사람이었는데,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다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생일 파티 (1)

지난 5월 말에 막내 딸의 열세살 생일 잔치를 해 주었고, 이제 조만간 작은 아들 생일이 돌아온다. 매년 마다 치르는 가족들 생일들 중에서도, 특히 어린 자녀들의 생일을 해주고 나면, 마치 큰 연중행사를 끝낸 것 처럼 속이 다 시원해 지는 건 다른 부모들도 같지 않을까 싶다. 보통 애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곳, 예를 들면 수영장, 볼링장, 아이스 링크, 인라인 스케이팅장 등등 여러 다양한 장소를 물색한 후, 알맞은 장소를 정해서 미리 날짜와 시간 예약을 하고, 2주전에 초대장 (invitation card)도 보내서 몇 명이 올 수 있는지 대충 파악한 후, goodybag (파티에 참석한 친구들이 돌아갈때 고맙다고 주는 조그만 종이백이나 플라스틱백으로 사탕이나 쵸콜렛, 작은 장남감 같은 것을 넣어준다) 도 준비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남자애들은 신나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데, Ultra Zone Lazer Tag (레이저총으로 노는 것), Paintballs (페인트가 들어있는 작은 총알이 든 총을 쏘며 노는 것), Go Kart (놀이용 경주 자동차 타는 것), Bumper Car (놀이동산에서 볼수 있는 서로 차를 부딪히면 노는 것) 등이 인기있고, 여자애들은 Stuffed Animals  & Dolls (동물이나 사람 인형을 직접 만드는 것), Craft Arts (여러가지 공작물 만든는 것), Clay Pot Craft (여러모양의 도자기 만드는 것), Girls Makeup Party (소꿉장난처럼 얼굴화장과 머리장식등을 하면 노는것) 등을 제공하는 장소에서 생일파티 하는걸 좋아한다. 그외에도 체조 같은 운동을 하면서 노는 곳이나 Moon Bounce (큰 풍선으로 된 작은 집안에서 뛰면서 노는 것) 같은 기구가 있는 곳에서도 하는데, 막 개봉한 인기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집에서 하루밤을 친구들과 함께, 영화 보고, 게임도 하고, 마음껏 수다도 떨 수 있는 Sleepover Party (Slumber Party, Pajama Party)인데 부모 입장에서는 그 많은 애들을 사고가 나지 않게 잘 감시 해야 하고, 집의 카페트나 벽, 가구, 장식물 등이 더러워지거나 깨지는 불상사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큰 마음 먹지 않고는 허락하기가 힘들다. 만약 이런 페키지 생일 파티에 10명 정도를 부르고 일인당 티켓과 함께 피자, 케잌, 음표수, goody bag, 접시, 포크, 냅킨, 생일초 등등 을 준비하려면, 보통 몇백불이 들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이런 타입의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건 아니지만, 생일을 큰 행사로 여기기 때문에, 신경을 좀 쓰는 부모들은 초등학생 때 까지는 큰 마음 먹고 생일을 해 주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고 유난한 부모들이야 더 호화로운 파티를 열어주겠지만 애들 생일 파티들은 이런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파티들도 13살이 넘어가면서 부터, 특별한 장소를 선정하지 않고, 친한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서 피자와 소다 (콜라 같은 탄산음료), 감자칩등을 먹으면서 놀든지, 파티할 돈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사는 걸로 대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초대받은 친구들도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없이 그냥 와서 놀다 간다.

내가 한국에 있을때는 보통 집으로 아들 친구들을 불러서, 김밥과 떡꼬치 등,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주는게 학생들의 일반적 생일 파티였는데, 요즘은 그때와는 너무 많이 달라진것 같다. 아예 돌잔치는 호텔에서 하는게 당연하게 됐고, 생일에 초대받고 온 친구나 손님들에게 주는 선물까지 웬만한게 아니면 안된다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나도 올해 딸의 생일파티는 큰 마음 먹고 집에서 열어 줬는데, 여기서 틴에이저로 불리는 열세살 (thirteen years old) 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 여섯살 생일 (Sweet sixteen birthday) 파티 역시 크게 해 주는데, 아마도 성인이 됐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Slumber Paty는 못해줬지만 오후3시부터 밤 늦게까지 집에서 놀 수 있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갖고 준비를 해 줬다. 하나에 $1짜리 나무 액자와 색깔 페인트, 예쁜 모양의 그림과 영어 알파벳 스티커, 여러가지 모양의 구술와 실을 준비해서, 초대받은 친구들이 자기만의 액자를 만들게 했고, 팔찌, 귀거리, 목걸이 등도 다양하게 만들게 했더니 너무 좋아했고. 거기에다 색깔 분필로 마당 바닥에 그림 그리기, Scavenger Hunts (종이에 씌여진 수수께끼를 풀면서 숨은 물건 찾기)도 하고, Guitar Hero와 비디오 게임까지 했는데, 초대받은 애들이 The Best Birthday Party of The Year (올해의 가장 좋은 생일파티) 라고 했다고 한다. 금상 첨화로 끼가 많은 작은 아들의 친구들까지 나중에 합세를 했으니, 그렇게 말 할 만 하다. 그래서 학교 프로젝트 끝내야 한다면서 오지 않은 친구와 개인사정으로 오지 못한 친구들이 나중에 이 얘기를 듣고 괜히 화를 내고 시기했다고 한다. 조용한 성격의 딸이라 아마도 생일 파티도 심심 할거라고 미리 단정짓고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파티를 열어 주면서 goody bag도 각자 자기가 만든 작품으로 대신했더니, 파티 비용을 거의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고, 애들은 애들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이제 작은 아들의 생일이 다음 달인데 워낙 꽤가 많은 녀석이라, 값이 나가서 여지껏 사지 못했던 물건을 사달라고 하면서, 동시에 친구들까지 부르는 꿩먹고 알먹는 요구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껏 조용한걸 보니 이제 좀 철이 들어가나 싶은데 엄마의 섣부른 생각일까? J

딸의 첫 브래지어 사주던 날

많은 엄마들이 늙어 갈수록 딸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다행히 내게도 두 아들놈 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막내딸이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중학교 2학년이 되는데, 몇주 전에 모녀가 함께 쇼핑을 하면서 예쁜 무늬가 그려진 브래지어를 몇개 사줬다. 여기 미국 여자 애들은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만 되어도 성숙한 애들을 많이 볼수 있어서, 딸의 친구들을 보면 도저히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벌써 4학년만 되가면, 남녀 학생들 사이에 여러가지 주의할 점들을 가르쳐 준다.

딸 애가 난생 처음 갖는 브래지어에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 올랐다. 우리가 어릴때는 요즘 처럼 보험제도가 잘 돼있어서 개인적으로 종합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건 아주 부자가 아닌 이상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고, 의료 시설도 좋지 않은 시대 였기 때문에, 그저 아프면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는게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체검사를 실시하곤 했었는데, 키와 몸무게를 재고, 치아 검사같은 아주 기본적 검사 외에, 손톱과 발톱, 머리에 이가 있는지 보는 위생검사도 했었다. 또 대변검사도 해서 회충, 촌충, 요충, 편충 등 기생충이 있으면, 구충제를 학교에서 선생님이 직접 보는 앞에서 먹게 하면, 아침도 못 먹고 온 가난한 애들은 그 독한 약에 견디지 못해서 구토를 하고 어지러워서 쓰러지곤 하는것도 보았었다. 그런데 그 때는 모두가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걸로 알았지만, 딸 애를 키우면서 새삼 옛날에 우리 세대가 했던 신체검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나는 다른 애들보다 키가 작고 성장도 빠른 편이 아니었지만 가난해서 학교에 늦게 들어오거나 다른 애들보다 성장이 빨라서 키도 크고 몸이 성숙한 여학생들은 벌써 5, 6학년 때부터 가슴이 나온 애들이 있었다. 그런 친구들은 항상 애들 놀림감이 되었고, 자기가 무슨 죄인인 양 항상 뒷자리에 앉았었고, 대체적으로 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신체검사를 하는 날은 남자와 여자애들 모두 똑 같이 팬티만 입고, 복도에 쭉 줄을 서서 키를 재고, 몸무게를 재고 했었는데, 가슴이 좀 나온 애들은 창피해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줄에 서 있으면 짓궂은 남학생들이 낄낄대며 웃었었는데, 그건 신체검사를 담당하는 남자 선생님들이 하는 행동에 비하면 아주 약과였다. 키를 재는 측정기에 올라서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는 여학생에게 능글 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막대기로 탁탁 치면서손 내려.” 하고 으름장을 주면 순진한 그 아이는 다들 쳐다보는 앞에서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어쩔수 없이 겨우 손을 내리고, 차렷 자세로 키를 재면 애들이 다 ! ” 하고 소리를 질렀던게 기억이 난다.

나는 큰 딸로 오빠, 언니가 없어서 생각하는 것도 어리고 tomboy (말괄량이, 왈가닥 소녀) 같아서 그때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사자인 그 친구들은 얼마나 큰 정신적 상처를 입었을까 상상하니 딸을 가진 엄마로서 마음이 아파왔다. 허울좋은 신체검사라는 이름으로 겨우 키와 몸무게 정도를 재면서 엄청나게 비인간적이고, 미개한 성추행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쳐온다. 신문, TV, 인터넷등의 메스컴을 통해서 듣는 어린 소녀들이 당하는 상상을 초월한 성폭력 기사들을 읽으면서 동생들에게 여자 조카들 (요즘은 남자 애들도 조심해야 하는 세상인것 같다) 항상 조심하게 키우라고 강조에 강조를 하는데, 결국 모든 면에서 morality (도덕성, 윤리성) 가 사라져서 발생하는 현상인것 같아 무척 안스럽다.

My son’s games

One of my son’s games came across several new sites where they mention his game, so I’d like to share them. You can play the game from these places or his website.

You can also play his other games from his website. Check them out!

출산율

지난 주, 한국 신문에 난 출산율 ‘1.0 쇼크 대한민국은 멸종위기’ 기사에서 셋째도 아니고 둘째만 가져도 혀를 찬다는 걸 읽고, 내가 셋째를 가지면서 마음고생 했던 기억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9년만에 둘째를 낳고 바로 일년이 되가면서 셋째를 갖게 되었는데 둘째 때와는 너무 다르게 만나는 사람들마다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 가슴에 마치 비수를 꽂는 것 처럼 들렸다면 과장된 말일까?

“지금 둘째가 걸음마를 막 시작했는데 어떻게 셋째를 키울거야?“애 아빠가 많이 벌어와야 겠다.“용감도 하네, 어떻게 셋째까지 가졌어?“와! 기저귀값이 무지 많이 들겠다. 둘째가 그때까지 기저귀 찰텐데.“셋째는 의료보험이 안된다고 들었는데. 한국 돌아가면 안되겠네.“좀 조심하지 그랬어.” 아니면 다짜 고짜 “왜 피임 안했어?“또 아들이면 어떡하냐. 딸 없으면 서글픈데.“애가 학교가게 되면 늙은 엄마라는 말 듣겠다.

기억나는 말들을 모두 적는다는게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아기를 가진 엄마에게 건네는 첫 반응치고는, 좋게 말해서 너무 솔직했다고 할까? 아니면 그것도 문화의 차이라고 이해를 해야 할까?

그런데 의외로 내가 만나는 미국 사람들은 정말 모두가 첫마디에 “Oh, how sweet!” “Congratulations!” “Baby is a really Gods gift.” “When is due date? (언제 출산일이죠?) When will you have a baby shower?” “Let me know when you need anything.” 당시는 내 영어 듣기실력이 좋지 않아서 다 기억을 못하겠지만 그들이 웃으면서 해주는 말들은, 남편까지 달가워 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우울해진 나를 위로해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서는 마음속과 달리 겉으로는 좋은 말만 해주는 경우가 허다하고, 뉴욕커 (뉴욕시내에 사는 사람들) 들 처럼 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에야 애들 셋, 넷은 보통이니까 당연히 좋은 덕담을 해주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게는 크게 힘이 되는 위로였으니까.

내 여동생과 나의 Best friend도 나보다 더 용감하게 한국에서 셋을 낳고 잘 키우면서 살고 있는데 운전하면서 애들 셋이 나란히 뒷자리에 앉아 있는것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난다는 말에 동감하면서, 임신한 엄마들에게는 배속에 있는 새 생명을 위해서 진심어린 축하를 해주기 바라며 하루빨리 “애들이 모두 몇명이에요?” 라고 물어보는 시대가 오길 희망한다

My son’s interview with the official Xbox Magazine

My son had the interview with the official Xbox Magazine,  and it was published this month. =)

Check it out! http://www.oxm.co.uk/article.php?id=7797

부모와 자녀 갈등

미국에서 애를 낳고 기르는게 한국보다 수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교육 환경에 대해서 무관심하던 부모들도 막상 그 당사자가 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많은 교포들이 애들 교육을 위해서, 그리고 여러가지 다른 사정으로 인해 이민을 오게 되는데, 모든 조건이 성공적으로 다 갖추어지고 앞날이 밝아 보여도, 애들이 점차 미국사회에 적응이 되어가면서, 한국적 사고로 자라고 길들여진 기성세대와, 물과 기름같이,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변해가는 것을 많이 접하게 된다.

한 예로 어느 1.5세 학생은 집문을 나감과 동시에 완전히 American이 되고 집으로 들어 옴과 동시에 완전히 Korean이 되는 이중적 생활을 완벽하게 한다. 그 학생은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 터득한 한국식 부모와 한집에서 살아가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 것이다. 그나마 그것은 다행이지만, 완전한 2세들, 더우기 언어도 부모와 완전히 통하지 않게 되어가는 2세들은 겉으로는 사랑하는 아들, 딸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남이 되어간다.

비슷한 예로 어느 엄마가 학교 사무실에 제출 할 서류가 있어서 아침 일찍 학교를 갔다가 화장실에 들렸는데 많은 여자애들이 옷을 갈아 입는다고 수선을 떨고 있어서, 유심히 봤더니 아침에 집에서 입고 간 옷을 당시 유행하던 Tank top스타일 옷으로 갈아 입고 있는 걸 보면서 놀랬다고 했다. 그 후에 그 Tank top은 학교에서 입지 못하게 규칙이 바뀌었다고 들었지만.

이런 상황들을 보고 들으면서, 여기서 애들 셋을 키우면서 느낀 점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지씩 시간이 나는대로 블로그에 적어볼까 한다. 그리고 우선 이 땅에 이민와서 묻힐거라면 부모님들도 최소한 문화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애들에게 보여줘야 될것이다. 애들도 부모들이 100% 완벽한 여기 사람이 될거라고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 노력 만큼은 인정할 것이다. 하루종일 애들을 위해서 일하고 고생한다는 것을 모를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최소한 우리 부모는 나를 이해 하려고 노력을 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안다면 그게 바로 부모 자식사이를 좁히는 첫 성공이 아닐까 싶다. 한 나라, 한 문화 안에서도 엄청난 세대갈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문화, 세대, 인종이 다양한데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그저 애를 키우는 부모의 현명한 지혜가 가장 필요한 해결책이 아닌가 싶다.

 

My son, Daniel

나의 둘째 아들, Daniel은 워낙 유머가 많고, 우스개 소리도 많이 하고, outgoing 스타일이라서 친구들이 많이 붙는다. 그래서 학교 회장이 되는데도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보통 10명 이상씩 붙어 다니는데 특히 친구들이 우리집에 오는걸 참 좋아한다. 내가 보기에 제일 큰 이유는 X-box, Wii, 닌텐도, 그리고 탁구, 당구 등등, 놀 게임들이 많아서 인것 같고, 다음은 내가 어렵고 생소한 아시안 엄마처럼 느껴지지 않고, 나 또한 그냥 막 내 자식들 처럼 대해서가 아닌가도 싶고 우리집  현관에 걸려 있는 자비의 예수님와 파티마 성모님이 애들에게 무의식적으로 편한 마음을 주는게 아닐까?  솔직히 회사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서 배도 고프고 빨리 저녁 먹고 쉬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급히 집에 오는데, 들어서는 순간 엄청나게 큰 보트같은 운동화들이 현관에 널려 있는 것을 보면 “어휴!” 하는 한숨이 먼저 나온다. 항상 먼저 내게 전화로 알리라고 해도 너무 노는게 좋아서 종종 잊는다. 요즘은 되도록 주말에만 오도록 하지만 …

솔직히 회사에서 오자마자 김치에 된장국에 왕창 냄새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TV나 보면서 쉬고 싶은데 아들 친구들이 그렇게 많이 저녁도 먹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나 혼자만 게걸 스럽게 먹을수 있겠는가. 팝콘에 칩에 먹다가 어떤 친구들은 부모가 저녁시간이 되서 데리고 가지만, 어떤 친구들은 아예 우리집에서 저녁을 먹을 거라고 했는지 부모가 안 나타난다.  스낵장에 있던 라면과 먹을 것들이 다 떨어진 날은 자기들 끼리 돈을 걷어서 피자를 시켰는데 그 몇조각의 피자가 왕성히 자라는 애들의 배를 채울수 있겠는가. 그러면 내가 더 추가로 시켜주든지, 치킨을 튀겨주든지 하는데 Daniel 이 미안한지 계속 엄마는 그냥 한국음식을 먹고 쉬라고. 애들은 절대 상관을 안 하니 아무것도 안해줘도 된다고 나를 위로하는 식으로 말한다.

그래서 내가 “Daniel, 나는 네 친구들도 똑같이 내 아들과 같다고 생각해. 그래서 저녁시간이 되면 모두가 배가 고파가는데 어떻게 친구들이 다 우리집에 있는데, 나 혼자만 배부르게 밥을 먹을수 있겠니?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많은 군중을 보시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먹을게 남은게 있느냐? 하고 물어보신것 처럼 나도 애들이 배가 고파갈텐데 노느라고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해. 아무리 너희들 주머니 돈으로 피자를 시켜서 먹는다고 해도, 엄마 마음이 편하겠니? 다 먹을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것. 내가 베푼만큼 하느님은 채워주시니 나는 네 친구들에게 피자를 더 시켜주든지 음식을 더 만들어줘도 내 아들들 같아서 기뻐. 그러나 저녁시간에 그 애들도 식구들과 오붓하게 함께하는 식사시간을 갖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은 한단다” 하고 말을 해 줬다. 그 순간 Daniel 이 감격한듯한 얼굴로 포옹을 하며 하는 말. I love you. You are the best mom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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