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파티 (2)

내게 가장 생각나는 내 생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2002년 회사에서 가졌던 생일 파티다. 그 날은 아침부터 이것 저것 마쳐야 할 스케줄이 있었는데, 업무 이메일들 중에는 오후 몇시에 회의가 있으니 아래 층 회의실로 오라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나는 부지런히 다른 일들을 마치고 수첩과 펜을 챙겨서, 항상 그러하듯이 영어 실수를 해서 창피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긴장된 마음으로 정확한 시간에 회의실로 들어갔다.

“Surprise!” “ Happy birthday! Agatha”

문을 열고 막 회의실로 들어가는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다양한 색깔의 풍선들로 장식된 테이블 위에, 큰 직사각형의 생일 케잌과 이쁜 냅킨과 접시가 놓여있고, 많은 회사 직원들이 회의실을 쫙 둘러싸고 있는게 아닌가? “Oh! My goodness.”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고, 빨개진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Thank you.”만 연발했다. 종종 다른 직원들의 생일파티에 참석을 해서 축하해 준 적은 있었지만, 내가 그런 파티를 갖게 되리 라곤 상상조차도 못했고, 기대도 하지 않았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서 참석해주고, 축하해 줬던 순간을 아직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젊고 늘씬해서 호감을 주는 스타일도 아니고, 영어도 어눌하게 하는, 일명 한국에서는 아줌마라고 불릴 내게, 그런 즐거운 생일 파티를 열어준 그 상사에게 아직도 고마움을 느낀다. 게다가 많은 직원들이 덕담을 적어 준 카드도 있었는데, 어디에다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는게 아쉽다.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이 애를 낳음과 동시에 이름이 ‘누구 엄마’로 변하고, 남편이 아주 자상하고 꼼꼼하게 가족 행사를 챙기지 않는 한, 주부의 생일은 종종 애들과 남편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특히 내 생일은 2월이라서 설날 연휴와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시댁에 설을 쇠러 가면, 내 생일은 당연히 실종되곤 했었다. 처음에는 무지 섭섭했지만, 이제는 아예 기대 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내 생일을 즐긴다.

당시 나는 모든 업무 스타일, 언어, 문화가 다른 전형적인 미국 회사에서, 하루 하루를 도전하는 마음으로 (오히려 투쟁이라는 단어가 더 가까울것 같다) 긴장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부하직원을 위해서 베풀어 준 생일 파티가 내게는 엄청난 자신감과 의욕을 불어 넣어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나의 블로그 애완 동물 (3)에서 언급했던, 자신의 greyhound (그레이 하운드) 개가 죽어서 사무실에서 슬피 울던 여자 상사였는데, 오십이 넘은 마음이 따뜻하고, 가난한 멕시코 이민자들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남을 잘 배려하는 큰 언니같은 사람이었는데,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다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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