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호칭

 아직도 영어를 쓰면서 ‘She’ 나 ‘He’ 같이 성별을 지칭하는 말 들이 자연스럽게 술술 나오질 않는다. 나 처럼 나이가 들어서 미국에 온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데, 대화 도중에 내가 어떤 여자에 대해서 말하면서, 무의식중에 “he”로 쓰고 있으면 상대방이 종종 고쳐 주곤 한다.

한국에서는‘그 여자’, ‘그 남자’ 라고 반드시 지적을 하지 않아도그애‘, ’엄마‘, ‘아빠‘, ‘아줌마‘, ‘아저씨‘, ‘오빠’, ‘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니면 ‘그 사람’ 등등 호칭을 구별해서 계속 그 호칭으로 대화를 할 수있지만 , 영어는 만약에 ‘the mother’ 가 대화중에 한번 나오면 그 뒤로는 보통 ’she’ 나 ‘her’ 로 대치하고 대화를 한다. 그래서 잘 의식하지 않고 영어를 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분명히 처음에는 그 집 아빠 얘기로 시작했는데 그 집 엄마 얘기로 완전히 뒤바뀌어서 대화가 끝이 날 수 있으니까.

이런 언어문화적인 이유 때문인지 남녀평등이 법적으로 잘 돼있고, 스포츠 분야에서도 체격조건이 좋은 여자들이 남자들 뺨칠 정도로 잘하는 반면에, 또 많은 여자들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섹시하게 보일려고 무지 노력을 하고, 남자애들은 더욱 남자 다워질려고 중학생만 되면 근육을 키운다고 유난 떠는 것을 보면 참 의아해진다. 한 예로 한국에서는 남자애들 운동화에 로보트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더라도 빨간색이 들어간 운동화도 많이 신는데, 만약에 여기서 그런 빨간색, 핑크색등의 신발을 남자애가 신고 학교를 가면 놀림을 받고 심지어는 게이라는 말도 들을 수 있다는데 그 이유가 어느 정도는 언어적인 배경에 기인하는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무튼 Native American 처럼 말하려고 꿈꾸는 것은 내게는 영원한 숙제임에 틀림이 없다.

출산율

지난 주, 한국 신문에 난 출산율 ‘1.0 쇼크 대한민국은 멸종위기’ 기사에서 셋째도 아니고 둘째만 가져도 혀를 찬다는 걸 읽고, 내가 셋째를 가지면서 마음고생 했던 기억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9년만에 둘째를 낳고 바로 일년이 되가면서 셋째를 갖게 되었는데 둘째 때와는 너무 다르게 만나는 사람들마다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 가슴에 마치 비수를 꽂는 것 처럼 들렸다면 과장된 말일까?

“지금 둘째가 걸음마를 막 시작했는데 어떻게 셋째를 키울거야?“애 아빠가 많이 벌어와야 겠다.“용감도 하네, 어떻게 셋째까지 가졌어?“와! 기저귀값이 무지 많이 들겠다. 둘째가 그때까지 기저귀 찰텐데.“셋째는 의료보험이 안된다고 들었는데. 한국 돌아가면 안되겠네.“좀 조심하지 그랬어.” 아니면 다짜 고짜 “왜 피임 안했어?“또 아들이면 어떡하냐. 딸 없으면 서글픈데.“애가 학교가게 되면 늙은 엄마라는 말 듣겠다.

기억나는 말들을 모두 적는다는게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아기를 가진 엄마에게 건네는 첫 반응치고는, 좋게 말해서 너무 솔직했다고 할까? 아니면 그것도 문화의 차이라고 이해를 해야 할까?

그런데 의외로 내가 만나는 미국 사람들은 정말 모두가 첫마디에 “Oh, how sweet!” “Congratulations!” “Baby is a really Gods gift.” “When is due date? (언제 출산일이죠?) When will you have a baby shower?” “Let me know when you need anything.” 당시는 내 영어 듣기실력이 좋지 않아서 다 기억을 못하겠지만 그들이 웃으면서 해주는 말들은, 남편까지 달가워 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우울해진 나를 위로해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서는 마음속과 달리 겉으로는 좋은 말만 해주는 경우가 허다하고, 뉴욕커 (뉴욕시내에 사는 사람들) 들 처럼 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에야 애들 셋, 넷은 보통이니까 당연히 좋은 덕담을 해주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게는 크게 힘이 되는 위로였으니까.

내 여동생과 나의 Best friend도 나보다 더 용감하게 한국에서 셋을 낳고 잘 키우면서 살고 있는데 운전하면서 애들 셋이 나란히 뒷자리에 앉아 있는것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난다는 말에 동감하면서, 임신한 엄마들에게는 배속에 있는 새 생명을 위해서 진심어린 축하를 해주기 바라며 하루빨리 “애들이 모두 몇명이에요?” 라고 물어보는 시대가 오길 희망한다

형제끼리의 호칭

앞서 내가 올린 호칭의 차이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에서는 이름을 부르는게 일반적이라고 해도 형제들 사이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할 때야 나이에 상관 없이 자신의 직위와 자격을 갖고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정에서 만큼은 이나 언니같은 호칭을 형제들끼리 쓰는게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내 둘째 아들이 습관적으로 계속 형의 이름 부르는 것을 보고 내가 매번 이라고 부르라고 고쳐주다 보니 지금은 이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다행히 첫째와 둘째사이가 9년이나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큰 애가 대학교를 가면서 동생을 다루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으며 (아무리 나이 차이가 많아도 자주 싸웠었다) 그때부터 둘째도 형이 큰 어른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둘째와 세째는 한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아서인지 도무지 작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이유야 오빠처럼 굴지 않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을 방해하고, 잔심부름이나 시키는데 무슨 오빠라는 것이다. 반대로 둘째 입장에서는  자기가 ‘형’ 이라고 부르는 것 처럼 세째가 오빠라고 부르면 심술을 부리지 않겠다고 하고. 내가 보기에 막내딸이 절대 작은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커 갈것 같다. 내가 하라고 하면 마지못해서 자아아근 오오빠~~~” 라고 하지만.

호칭의 차이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되고, 존칭어 표현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를 할때 몸과 손, 풍부한 얼굴 표정으로 대화를 하는 미국사람들에게서, 특히 손으로 상대방을 가리키면서 ‘You’ 라고 지칭하는 호칭에 당황하거나 기분이 나빠진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리고 특히 자식들이 영어로 부모에게 ‘You’ 라고 할때 아무 느낌 없이 듣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여기서는 단순히 상대방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당신이 뭔데.” “당신 잘났어.” 등등 당신이라는 늬앙스가 완전히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주 사무적인 사이가 아닌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상대방 이름을 부르는데 이런 점 또한 적응이 쉽지 않은 문제 중의 하나이며, 아무리 오래 미국에 살고 있어도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를 보면 ‘You’ 라는 호칭에는 금방 적응을 했지만 이름을 부르것 만큼은 같은 동창들을 제외하고는 할수가 없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열명 안밖의 한국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다른 직원들을 부르거나 이메일을 보낼때는 모두 그들의 이름을 사용하고, 그게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 직원들에게는 ‘Mr. Park’ 이나 ’Mrs. Lee’ 등으로 쓰거나 한글로 선생님호칭을 추가한다. (참고로 여기서는 아주 친하지 않으면 결혼같은 사생활을 잘 모르기 때문에 보통 여성들에게는 Miss Mrs. 대신에 Ms.를 많이 쓴다)

 

어느날 회사에서 한 직원의 생일파티를 할때 한국 직원이 함께 있었는데 대화들을 나누면서 계속 ‘Mrs. Mun’, ‘Mr. Park’ 하면서 부르니까 한사람이 의아해 하면서 왜 서로를 그렇게 부르냐고 물어보는데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게 한국 문화에서는 예의에 어긋난다고 하니 놀라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이민 온 나이 많으신 어른들은 심지어 Mr. Mrs. 라는 호칭 조차 건방지다고 듣기 싫어하신다.

 

그러나 복도,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한국사람끼리 만날때 손을 흔들면서 “Hi”, “How are you!” 하는 인사 대신에 안녕하세요하면서 고개를 숙이면서 하는 인사법은 여기서도 많이 알려져서 크게 의아해 하지는 않지만 호칭 만큼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My favorite tennis players

내가, 그리고 우리 식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스포츠는 축구, 풋볼, 농구, 수영도 아니고 단연코 테니스다. 우선 서로 몸싸움을 하지 않으면서 개인기가 뛰어나야 되고, 엄청난 스피드와 힘이 있어야 되며 동시에 재빠른 판단력이 요구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코어를 산정하는 기준이 아주 공평해서 서로의 수준이 차이가 나면 금방 승부가 나지만 비슷하면 하루종일도 가는 경기 이기 때문에 결국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함께 센 선수가 이기는 스포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119일부터21일까지 호주 멜버른에서 테니스 오픈 이 있어서 거의 준준 결승이 시작되는 날 부터는 새벽 330분 에 일어나서 (시차가 달라서) 생방송을 보느라 잠이 부족한 상태로 출근을 했고, 준결승전인 Rafael Nadal Fernando Verdasco의 장장 5시간 14분간의 혈전을 보느라 꼬박 밤을 새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세계 1, 2위인 Rafael Nadal Roger Federer 가 결국 결승에서 맞붙었다. 우리식구가 좋아하는 그 두 선수 외에도 세르비아 선수인 Novak Djokovic 이 있는데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더운 날씨에 못 버티고 중간에 기권을 했던것 같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섭씨 60(약 화씨 147) 를 넘는 온도계를 처음 봤다. 중계방송을 하는 캐스트가 온도계를 보여주는데 60도가 Maximum 인데 바늘이 그 온도를 넘은것이었다. 그런 날씨에서 보통 두 세시간이 넘는 게임을 선수들에게 하게 하는것은 완전히 고문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Djokovic 에게는 안됐지만  다음날 Serena Williams 가 경기를 하는 도중에 관중들과 선수의 메니저들의 항의가 빗발쳤는지 결국 주경기장 천정을 닫고 에어컨을 틀기 시작하는걸 보면서 세르비아와 미국이 어떻게 선수들을 보호하고 얼마나 자기 나라 선수들을 위해서 주최측에 힘을 가하는지 개인적으로 그 차이를 감지 할수 있었다.

 

결승전 날은 그 정도의 찜통 더위는 아니어서 경기장 지붕을 열고 게임을 시작했고, 결승 마지막 5세트에서 투지로 밀고 오는 Rafael에게 Federer는 돌이킬수 없는 중요한 실수를 반복하면서 결국 눈물로 수상식을 장식했다멋있는 세계 Top 선수들의 결승전을 보면서 그리고 우리식구가 제일 좋아하는 Rafael Nadal의 우승보면서 즐거웠지만 이제 무슨 재미로 Davis Cup 까지 기다리지 하고 웃어본다.

어느 따뜻한 늦겨울 날

한참 추운 날씨가 계속 되더니 어제부터 갑자기 봄 날 처럼 따뜻해졌다. 그래서 공원이나 도로, 쇼핑센터 등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벌써 봄이 온 것 처럼 모두들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눈에 바로 띄는게 달라진 복장들이다. 한국에서는 대체적으로 계절에 따라서 옷을 입기 때문에, 한여름에 겨울 처럼 갑자기 추워졌다고 오버코트를 입고 나오거나, 한겨울에 여름처럼 더운날이 됐다고 맨소매를 입고 거리로 나간다는 것은 엄청나게 용감하거나 낯이 웬만큼 두껍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그런데 여기는 옷을 계절별로 정돈하지 않고 옷장에 사계절 옷을 한꺼번에 두는지 한 겨울에 날씨가 따뜻해지기만 하면 너나 할것 없이 하루밤 사이에 여름 옷차림으로 바뀐다. 그리고 한 여름이라도 바람이 불고 쌀쌀한 날이면 겨울 파커, 털코트 입은 사람들을 수시로 볼수 있다. 그렇다고 주위 시선이 부담스럽지도 않고 모두들 당연하듯이 아무의식 없이 그냥 지나간다. 이럴때 마다 기억나는 일은, 큰아들이 여기와서 얼마 되지 않은 4월 중순에 초여름 처럼 아주 더운 날 나는 그저 평상시 처럼 긴팔 티셔츠에다 얇은 봄 점퍼를 입히고 학교를 보냈더니 완전히 땀으로 범벅이 되서 진이 다 빠진 아들이 헉헉대면서 나 혼자만 이런 옷 입고 갔었어요.” 하는게 아닌가?

여기는 비가 한 번 쏟아지거나, 벼락이 치거나, 바람이 세게 불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아서 TV에서 눈이 많이 내릴거라는 기상예보가 나오면 수퍼마켓에 있는 우유나 물, 소금, 눈 삽 등이 순식간에 동이 난다. 그만큼 넓은 땅 덩어리에서 거대한 자연과 가까이 살다 보니 자연의 웅장함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중에 생겨난게 아닌가 싶다. 여기 온 첫 여름에 동네 수영장에서 애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데 금방 천둥번개가 칠거라는 위성 뉴스가 있었으니 다 물에서 나오라는 거였다. 아무리 하늘을 쳐다 봐도 구름 한점 없이 파란데 무슨 번개는 얼어죽을 번개냐 하면서 무시를 하고 계속 물에서 놀고 있었는데 인명 구조원 (Lifeguard) 이 계속 마이크로 나오라고 소리를 쳐서 주위를 둘러보니 “Oh! My goodness.” 어느새 그 많던 꼬마들과 어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다 집으로 갔고 (허둥 지둥 집으로 도망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거 같다) 우리만 물에서 좋다고 텀벙대고 있었다. 여기 골프장에서도 갑작스런 천둥을 동반한 폭풍 (Thunder Storm) 경보가 울리면 골프장 측에서 빨리 나오라고 아무리 경고 방송을 해도 내가 했던 것 처럼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들은 한국사람이라고 들었다.

올 봄은 따뜻한 날씨에 속아서 너무 빨리 팬지사다가 심어서 다 얼어 죽게하는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지 다짐 하면서도, 노란 개나리, 빨간 진달래가 피는 봄을 상상하면 이 늦겨울을 지긋하게 기다릴 수 없게 만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가 주 하느님 크시도다를 되새기면서

1)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후렴 :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주 하느님 크시도다.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크시도다 주 하느님)

2) 저 수풀 속 산길을 홀로 가며 아름다운 새소리 들을 때 산 위에서 웅장한 경치 볼 때 냇가에서 미풍에 접할 때 (후렴 :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주 하느님 크시도다.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크시도다 주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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