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빨리 문화

미국에 온지 얼마가 지난 어느날 수퍼마켓을 가서 필요한 물건들과 함께 한국에서 못 보던 상품들을 시식도 해 볼 겸 몇개를 사서 계산대에 주섬 주섬 올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 뒤에 선 남자가 갑자기 “It’s ok. Don’t rush. Take your time.”(괜찮아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요.) 이러는게 아닌가? “아뿔사!”

내가 한국에 있을때 집 근처에 소형 백화점과 함께 아래층에는 수퍼마켓이 있었는데, 당연히 물건들을 산 후에는 계산대에 아주 신속하고 재빠르게 그 물건들을 척척 올려 놓으면, 나보다 속도가 더 빠른 여점원이 계산을 하는게 당연한 것이었고, 만약에 그 계산 속도가 좀 느리거나 물건에 문제가 있어서 점원과 한 마디라도 하려고 잠시라도 지체가 되면,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평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일반적인 현상에 익숙해진 내가, 무엇에 쫓기는 사람 마냥, 나도 모르게 부랴 부랴 물건들은 계산대 위에 올려 놓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은 아마도 자기가 나를 빨리 빨리 계산 하라고 다그치는 것처럼 내가 오해한다고 생각 했든지, 아니면 작은 아시안 여자가 높은 계산대 위에 작은 한 손으로 잡기에는 큰 물건들을 (여기서의 일반 사이즈가 한국에서 치면 large size) 헐레벌떡 올려놓는 모습이 너무 안스럽게 보였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그렇게 좀 어색한 상황 아래라면 애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라든가, 애들 데리러 가야 된다든가, 영어로 둘러 댈 수도 있었을텐데, 당시에는 영어가 금방 나오지도 않아서 혼자만 얼굴이 빨개져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으니

무의식적이고 습관처럼 나타나는 나의 재빠른 행동이 이런 인상을 남에게 준다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사람들도 나 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남자가 내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여기서도 동양 수퍼마켓들 (거의 한국주인이 운영하는 대형 매장들)의 계산대 풍경은 한국과 같이 아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아주 많이 다른것 같지 않다.

그 후 나는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되도록이면 모든 걸 천천히 여유있게 하려고천천히 말하고, 걷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운전하고, 등등노력을 하고 있지만 천성이 급하고, 어릴때 부터 그런 빨리 빨리 문화가 몸에 밴것을 나이가 다 들어서 한번에 고친다는게 쉽지는 않다.

요즘 처럼 거의 모든게 인터넷으로 이루어지고 초고속으로 가는 세상에서, 빨리 빨리문화는 많은 장점을 주고 그 덕에 한국이 많은 발전을 하고 있지만, 가끔씩은 일부러라도 느긋하게, 천천히 하루 일과를 지낸다면 아마도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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