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 (사실) 와 Opinion (의견)

인터넷이 발달 되면서 어떠한 정보들도 거의 다 얻을 수 있고, 신문구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서 중요한 사건, 사고, 큰 이슈화된 기사들을 읽을 수 있어서, 나는 미국 뉴스 외에도 한국에서 주로 봤던 신문들의 인터넷 사이트를 수시로 방문한다. 오랫동안 두 나라의 신문 기사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 신문들의 기사들은 제목부터가 너무 감정적이고 사실전달 능력이 부족하며, 가장 문제점은 기사를 쓰는 기자가 fact (사실) opinion (의견, 견해) 을 철저하게 구별하지 않고 개인 칼럼 처럼 기사를 쓴다는 것이다. 기자의 역할은 일어난 사건, 사고에 대해서 있는 사실만을 정확하고 간단 명료하게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제일의 의무인데, 기사가 아닌 칼럼이나 비평이 아닌가 혼동을 일으키는 기사가 너무 많다. 당연히 신문에는 칼럼 란 따로 있고 기사 란이 따로 있는데 말이다.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인터넷 신문, 방송도 늘어났고 지방 자치제가 시작되면서 각 지방의 미디어 매체들도 생겨났고, 정치 성향에 따라 보수, 진보를 자처하는 신문들도 많이 생겼다. 소위 진보 좌파 성향의 신문들은 자기들이 바라는 목적대로 붓이 가게 돼있기 때문에 fact opinion을 굳이 따질 필요 조차 없으나, 많은 독자를 갖고 있고, 역사가 오래된 주요 신문들도 요즘은 그런 신생 신문들이나 삼류 잡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분석해 볼때, 아마도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젊은 기자들이 많아지다 보니 사실을 보고 분석하는 능력도 떨어지고, 많은 신문이 생기다 보니 전반적으로 기자들의 질도 전보다 많이 떨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신문기사 제목들을 열거해 보았는데, 사실 그대로를 충실히 전달하기 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데 목적이 있는것 같다. 제목이 이렇게 독자들에게 선입감 부터 준다면 어떻게 그 기사가 정확한 사실을 전달했다고 독자들이 믿을 수 있겠는가?  

신문 제목들의 예 ()—이치로 버스코리아타운 돌며 한인들 자극?’; 아직도 못 찾아간 김연아 졸업앨범, ‘수상한데?’; 백골에 약 처방 한 이탈리아 의사들 맞아?; “헬기타고 서울 보라” MB 말에 젊은이들 실소; 강남行 지원했던 경관 “괜히 찍히기만 했네”; 잘나가던 한의학, 허약해졌나.; “또 한일전…차라리 가위바위보 하자“; “경주 △△△ 지지율 더 높아소문 확인되면…; 당당한 캐나다쇠고기 수입안하면 한국 제소“; 남상국사장 한강 투신후에도 절제못한 봉하대군; ‘뚱뚱남서럽게 한 지하철좌석, 9호선 본받아라; “계약위반시…대형기획사가 만든 몰상식 조항

게다가 독자가 많지 않은 인터넷신문들은 가장자리에 야한 여성사진이나 색깔이 강한 많은 그림이나 선전들을 한 페이지에 집어 넣어서, 가끔 회사에서 한국 뉴스를 보려고 열었다가 오해받는 경우도 있어서 정말 인터넷 강국의 신문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LG Xenon cell phone (휴대폰) 이나 삼성 폰같이 한국 휴대폰들의 인기가 대단하고, 한국 가전제품까지 주요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의 매스 미디어 (mass media) 들은 언제면 fact opinion을 구별하는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잔디 깎는 철

여기서는 보통 4월로 접어 들면 여기 저기서 잔디 깎는 기계소리가 주말 아침의 달콤한 늦잠을 방해한다. 보통 일주일만 지나도 상태가 좋은 잔디는 금새 많이 자란다. 그리고 그 잔디 깎는 일은 (lawn mowing) 아빠나 아들들의 몫인데 바쁘거나 여건이 안되면 잔디 깎는 회사에 맡긴다. 그래서 산책을 할때 유심히 관찰을 해보면 어떤 집의 잔디는 꼭 푸른 카펫을 깔아 놓은 것 처럼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또 어떤 집의 잔디는 클로버와 민들레 (여기서는 잔디를 괴롭히는 골치 아픈 풀로 여김) 가 반 이상 덮이고 너무 길게 자라서 마치 정글처럼 된 집도 있다. 그래서 봄만 되면 TV에서 풀 죽이는 약 (weed killer), 잔디 거름 (fertilizer), 풀이 잘 안자라게 하는 약 (weed controller) 등의 선전을 많이 볼 수 있다. 보통 잔디를 깨끗이 가꾼 집은 현관앞도 깨끗해서 아름다운 반면, 잔디가 엉망인 집은 칠한 페인트도 벗겨지고 앞마당도 쓸지 않아서 더럽다. 만약에 이웃집 잔디에 풀이 너무 많으면 그 풀씨앗이 날려서 자기 집으로 넘어 오기 때문에 잔디 관리를 못하는 이웃을 두면 골치가 아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참다 못해서 자기 집 앞마당을 관리 하면서 옆집 잔디도 함께 깎아 준다든지 죽은 꽃이나 풀을 뽑아주는 등 남에게 봉사한다는 좋은 마음으로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에 까다로운 이웃일 경우에는 큰 문제로 발전할수 있다. 왜냐하면 남의 property (소유지)에 주인 허락 없이 침범했기 때문이고 남의 소유물을 함부로 만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인터넷뉴스나 편지 서비스를 친구도 좋아 할것 같아서, 허락 없이 친구의 이메일 주소로도 그 서비스를 신청 했다면, 그 친구는 매일 들어오는 그 이메일이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이민 온지 얼마 안 된 한국 주인이 자기집의 잔디를 깎으면서 옆집 잔디가 긴 걸 보고 양심상 어떻게 우리집것 만 깎고 획 들어가버릴 수가 없지혹은 이렇게 깎아주면 기뻐하겠지하고 허락없이 선의로 깎았는데, 마침 상대방은 개인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앞마당을 예쁘게 단장 하려고 했거나, 잔디의 길이를 좀 길게 깎을려고 생각했는데, 옆집에서 허락 없이 아주 짧게 깎아버렸거나, 엉망으로 대충 깎아 놨다면 이웃에 잘해 줄려고 한 선의가 오히려 서로 말도 안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당연히 그런 상태가 나쁜 잔디를 그냥 둔 이웃이 있으면 HOA (Home Owner Associate) 에 보고를 하고, 그 곳에서 경고 편지를 보내게 되고, 계속 시정이 안 되면 벌금도 감수해야 한다. HOA는 동네를 더 잘 유지 하기 위해서 집과 정원, 도로, 놀이터, 애완동물, 자동차 주차, 등등에 대한 주민의 불만을 받고 시정조치 하며, 그 동네관리를 위해서 매달 일정 금액을 징수하고, 일년 예산도 정하며, 눈을 치우거나 동네 조경을 위한 회사를 선정하는 일도 한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퇴근을 하면서 이번 주말에는 아들 녀석도 한가하니 잔디를 깎으라고 시켜야지 마음 먹고 집에 왔는데 옆집에서 친절하게 잔디를 깎아줬다. 아마도 아들에게 시키면서 우리집것도 깎으라고 했던것 같다. 그런데 우리집 현관을 중심으로 양쪽에 잔디가 대칭으로 되어 있는데 한쪽편 만 깎여 있었다. 보통 잔디를 깎은 후에는 가장자리를 줄로 그으것 처럼 똑바로 쳐주고, 깎여나간 잔디들은 깨끗하게 쓸어줘야 되기 때문에, 주말까지 기다리기에는 보기가 흉해서 결국 피곤함을 무릎쓰고, 저녁도 뒤로 미루고, 안 깎인 반대편의 잔디를 혼자 깎았다. 옆집의 도움이 약간의 시간은 절약될 수 있었지만 왜 부탁도 안 한 일을 해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나 짜증을 내면서도, 직장 다니느라 바쁜 나를 생각해서 깎아 준 선의의 마음을 보고 이해하기로 했다.

올해는 특히 열심히 잔디에 신경을 쓰려고 마음을 먹고, 봄이 오기 시작하면서 mulch (멀취-나무등을 잘게 짤라서 나무나 꽃의 밑둥에 덮어주는 것으로 더운 여름에 수분이 빨리 빠지는것 막는 역할을 하는 것) 를 깔아주고, weed controller를 뿌리고 거름도 줬다. 그래서 올해 우리집 잔디는 다른 집보다 더 진한 초록빛을 띄고 빨리 자라고 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직장 관계로 집에서 먼 주 ()로 이사를 갔고 둘째는 봄이 시작되면서 어깨를 다쳐서 그냥 잔디 깎는 회사의 서비스를 올 봄 부터 받고 있다. 거의 모든 남자들이 하는 일을, 땀 뻘뻘 흘리면서 잔디 기계질을 하는게 싫고, 아무도 살려주지 않는 자존심, 내 스스로라도 살리기 위해서…

말 잘하는 사람들

항상 내가 여기서 놀라는 것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기 표현을 너무나 조리있게 잘 말한다는 것이다. CNN이나 여러 주요 방송들의 대담프로를 보면, 여러명이 제각각 자기 주장들을 논리있게 펼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 직원들이 자기 의견을 조목 조목 아무 꺼리낌없이 잘 말하는 걸 보면서, 감탄을 하게 되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저런 말을 어떻게 감히 할수 있을까 놀라고, 또 그런 말을 해도 참 잘 경청 한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란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 사람들은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거침없이 술술 말을 할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선 어릴때 부터 말을 자유롭게 할수 있는 환경을 가정에서 부터 마련해 줬다는 것이다. 내가 앞서서 언어 문화에 대해서 썼던것 처럼,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상대방을 “you”라고 하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끔씩 외국 영화를 보면 어린 손자와 할아버지, 혹은 부모와 자녀들이 마치 같은 나이의 친구들 처럼 얘기 하는 장면이 나오는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인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많이 하는 ‘show & tell’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애들에게 설명해주면서 자랑할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그러나 동물이나 위험한 물건은 금지된다.) 역시 여러 사람 앞에서 얘기를 잘 할수 있게 훈련 시키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 인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제일 큰 이유는 누가 어떠한 주장을 펼치든 명령 체계로 된 군대가 아닌 이상, 당사자의 마음에 들던지, 안 들던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 때문에, 나이가 많거나 그 쪽 숫자가 더 많다고 윽박지르며 중단시키거나 야유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보면 선천적으로 명랑해서 말도 잘 했을 것 같은데, 여러 사람 앞에만 서면 무릎부터 떨리기 시작하고,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머리가 멍멍 해진다. 머리속에는 말하고 싶은게 많지만, 입으로 조리있게 나오질 않는다. 내가 나를 진단하기에 말을 하기에 앞서서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인것 같다. 우리가 어릴때는 사람들 앞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자기 생각을 좀 주장 할라 치면, ‘좀 점잖게 있어라’, ‘예의를 지켜라’, ‘철 좀 들어라’, ‘어른들 앞에서 까불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라’, ‘아무리 입이 가지러워도 좀 참고 조용해라’, ‘잘 난척 하지 마라’,  여자애가 좀 조용하고 차분해야지’, ‘체면 좀 차려라’, ‘딴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겠니등등 말을 아주 잘하는게 버릇없는 것처럼 여겨졌었다. 그래서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눅부터 들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머리에 그리게 되니 당연히 말을 잘 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잘하라고 보내는 웅변학원들도 하나같이 자기가 생각하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말을 하게끔 가르치기 보다, 쓰여져 있는 글을 외워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의 높낮이를 잘 조절해서 소리지르면 잘 한다고 박수를 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선거에 나오는 한국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으면, 초등학생들의 웅변만도 못 한걸 느낀다.

당연히 애들이 습관적으로 남을 비방하거나 상처주는 말을 하면 고쳐 줘야 하겠지만,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며 합리적이고 논리 정연하게 말을 잘 하는 자식이 있다면, 아무리 부모의 의견이 그것과 달라도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들어줄려고 노력한다면 아이의 연설 잘 하는 재능이 빛을 볼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젊은 연예인들이나 대담 프로 진행자들이 우리 때와는 전혀 다르게 아주 말을 재미있게 잘 하는걸 볼 수 있고, 예전의 웅변학원과는 다른 방식의 스피치 클래스 (speech class) 들도 생겨서 각본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걸 가르치는 것같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과 말,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가 되지않고 진실성이 결여된다면, 아무리 말을 잘해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 결국 그 사람을 신뢰 할수가 없을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만약에 미국에서도 한국 처럼 뚱뚱한 사람이 길을 지나갈때, 야유나 조소를 보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미국 사람들의 비만율이 쬐끔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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