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천국

뉴욕같은 큰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미국 주택가와 인접한 상가나 공공장소의 주차창들은, 대체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큰 무리 없이 쉽게 주차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주차장이든 제일 좋고, 입구와 가까운 곳에 장애자 주차공간이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사람이 휠체어 같은 것을 타고 혼자 볼 일을 보러 밖으로 나가도, 건널목이나 높은 턱이 있는 인도나 차도에는, 바퀴가 안전하게 굴러 갈 수 있게 턱이 없는 경사도로를 만들고, 거기에 미끄러 지지 않게 자갈을 시멘트와 함께 섞든지 시멘트위에 선을 그어서 요철을 넣은 걸 볼 수 있다. 많은 장애자들이 그들의 정당한 인권을 보장 받기 위해서, 정부 그리고 법정과 싸웠던 기록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오늘의 이런 혜택을 이끌어 내기 까지 많은 희생이 따랐었다는 걸 알수 있었다. 결국 ‘No Pain, No Gain’ (고통이 없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처럼 하루 아침에 그냥 거저로 주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장애인들의 인생 성공 스토리를 들으면서 감동을 하지만, 직접 그런 장애를 겪고 있든지, 장애를 가진 식구가 있어서 매일그런 생활을 함께 공유하지 않는 한, 건강한 정상인이 장애자를 진정으로 이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교만한게 아닌가 싶다.

회사에서 일이 바쁘고 일손이 모자라게 되면 시간당 수당을 지불하는 임시직을 단기간 동안 쓰는데, 그런 경우가 생길 때 마다 종종 일하러 오는 필리핀계 미국 남자가 있다. 그 사람은 귀가 잘 안 들려서 고성능의 보청기를 사용하는데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판단을 한다. 아주 개인적으로 친하지 않는 한 자세한 사생활을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몇 살인지, 왜 귀가 안들리는지, 부인과 자식은 있는지 등등은 모르지만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사를 하고 늙은 어머니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급하게 지시를 하거나 논의를 하려고, 그 사람을 부를 일이 생기는데, 아무리 크게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 자리까지 가서 얘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경우가 많아 지다 보면, 점점 답답하고, 짜증이 나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잘 듣지 못한다고 혼잣말로 중얼 중얼 입에서 불평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큰 장애가 아닌 경우에도 금방 인내심을 상실하게 되는데,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애환은 얼마나 깊을까 싶으면서 반성을 했다. 그래도 그 사람은 가끔씩 전화도 하는걸 봤는데 아마도 특별한 진동 보청기를 쓰는것 같았다.

몇년 전 내가 살던 집 이웃에는,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남자애가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고, 가끔씩 그 애의 아빠인지 엄마의 남자 친구인지, 한 남자가 와서 애들을 데리고 놀러 나가기도 하는걸 봤었는데. 아마도 그 남자애가 자폐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매일 아침 학교 갈 시간이 되면 스쿨버스가 그 집 바로 앞에 도착해서 그 애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정상적인 학생들은 몇 블럭이 떨어진 큰 도로까지 걸어가서 그 근처 동네에 사는 애들과 함께 스쿨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지만, 그 학생은 그 큰 버스가 좁은 집 앞 도로까지 와서 기다리는 걸 보면서, 얼마나 감탄해 마지 않았는지 모른다. 어떨 때는 애가 준비가 덜 됐는지, 한 참을 기다린 후 에야 겨우 엄마가 데리고 나오는데, 오히려 창문으로 쳐다 보는 내가 늦게 나오는 애 때문에 불안해 하곤 했었다. 왜냐하면 그 버스 운전기사가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가버릴 것 같아서인데, 그때까지 잘 기다려 주는 버스 운전기사를 보면서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그 애는 항상 얼마짜리인지는 몰라도 지폐 돈을 손에 잡고, 계속 끊임없이 흔들었는데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는지 이 글을 쓰다보니 궁금해진다.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올 백점을 받아야 되고, 명문 대학을 가야 되고, 키도 최소한 6 feet이 넘고, 얼짱, 몸짱이 되야 된다는 등 욕심을 부리지만, 그저 애들이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소화 잘 시키고, 잠 잘 자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감사가 아닌가 싶다.

인종에 대한 편견

내 작은 아들 친구들은 나를 여기에 이민와서 사는, 여느 아시안 엄마들과 다르다고 생각을 한다. 내가 영어를 무지 무지 잘 해서도 아니고, 얼굴 생김새가 서양인 같아서도 아니고, 기름지고 느끼한 토박이 미국 음식을 주로 먹거나, 몸이 펑퍼짐하고, 덩치가 크고,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한 것도 아니고,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내가 공부 하라는 잔소리를 잘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애들에게 인기가 있는 YouTube 사이트에는 아시안 학생들이 공부만 하라는 부모의 잔소리를 풍자한 인기 비디오들도 있고, 미국 공립 학교 중에서 최고라는 토마스 제퍼슨 과학 고등학교 입학 설명회에도, 거의 반 이상이 아시안 부모들로 채워지고, 주말이나 방과 후에 자녀들을 학원에 데리고 가는 부모들도, 대부분이 아시안 부모들이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아시안 부모, 특히 아시안 엄마들은 공부만 시킨다는 선입감이 생기된 건 당연한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백인 친구는 자기 부모 그런 아시안 엄마들과 같이 공부를 심하게 시키고, 심지어는 공부를 못 끝내면 친구들과 노는 것 까지 금지한다는 불평을 하면서, 작은 아들에게 너희 엄마는 그러지 않아서 참 좋겠다고 한다는데, 내 속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지 공부 열심히 하는 걸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많은 아시안들은 어느 정도의 Martial Arts (무술)는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 하기도 한다. 다양한 인종들이 사는 사회인 만큼, 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등이 보장되고, minority group (소수인종 그룹)에 대해 여러 혜택을 주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도, 짐작하건데 하루 아침에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자라오면서 예전의 많은 영화들에 나오는 백인 배우들의 좋은 역할과 흑인 배우들의 범죄자같은 나쁜 역할 이미지로 인해서 그런 선입감이 자리 잡게 된 것도 사실이다. 길을 가다가 좀 단정하지 못한 흑인이나 멕시칸이나 스페니쉬들이 다가오면 경계심을 가졌었다. 그래서 미국을 처음 방문하는 연세가 많은 분들은 길거리 에서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아무 상관없는 흑인 만 봐도, 무서워서 슬슬 피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테러를 당해서 무너진 9.11 사태 이후, 머리에 터번을 두르거나 생김새가 아랍인 처럼 생긴 사람들이 분노의 표적이 됐던 점도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아시안인 나를 보는 관점이 어떠한지는, 실지 내가 겪었던 다음 경우에서 잘 나타난다. 예전에 학교 점심시간에 학부모로 봉사를 했었는데, 학교 식당을 개조하는 공사 때문에 학생 전체가 몇 달간 점심을 교실에서 먹게 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점심이 끝나가면 큰 쓰레기통을 밀고 이 교실 저 교실을 다녔더니, 내가 애들 눈에는 학교 청소하는 아줌마로 보였는지 한 친구가 너희 엄마 학교에서 일하니 하고 물어 보더라고 했다. 여러 백인 봉사자 엄마들과 함께 일을 했었는데,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 역시 인종에 대한 선입감일 것이다. 또 매주 토요일 아침에 내가 다니는 성당의 청소 봉사를 했을 때도 역시, 미국 신자들이 성당에서 고용한 청소 아줌마로 착각을 했었다. 여기서 입에 오르내리는 한 우스운 일화가 있는데, 백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사 온 한국 주인이 잔디를 깎고 있었는데, 이웃집 차 한대가 다가 오더니, 운전을 하던 남자가 그 집 잔디 서비스를 끝내면, 자기집 잔디도 깎아 달라고 하면서 집 주소를 주더라는 것있다.

요즘 신문과 TV에서는 하버드 대학의 흑인교수가 출장을 다녀온 후 자기집 문이 잠겨 있어서 택시기사와 함께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다가, 도둑으로 착각한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잡혀갔는데, 경찰이 무리하게 다루었다, 아니다 하면서 논쟁이 뜨겁다. 아무튼 인종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전체 사회의 변화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큰 희망을 주는 것은 흑인 대통령의 탄생으로 인종에 대한 나쁜 선입감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이 엄청난 역사의 전환점을 계기로 흑인들의 사회, 정계 진출 등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데 비해서, 아쉽게도 미국내 아시안들의 파워는 아직도 약하고 갈 길이 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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