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 (사실) 와 Opinion (의견)

인터넷이 발달 되면서 어떠한 정보들도 거의 다 얻을 수 있고, 신문구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서 중요한 사건, 사고, 큰 이슈화된 기사들을 읽을 수 있어서, 나는 미국 뉴스 외에도 한국에서 주로 봤던 신문들의 인터넷 사이트를 수시로 방문한다. 오랫동안 두 나라의 신문 기사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 신문들의 기사들은 제목부터가 너무 감정적이고 사실전달 능력이 부족하며, 가장 문제점은 기사를 쓰는 기자가 fact (사실) opinion (의견, 견해) 을 철저하게 구별하지 않고 개인 칼럼 처럼 기사를 쓴다는 것이다. 기자의 역할은 일어난 사건, 사고에 대해서 있는 사실만을 정확하고 간단 명료하게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제일의 의무인데, 기사가 아닌 칼럼이나 비평이 아닌가 혼동을 일으키는 기사가 너무 많다. 당연히 신문에는 칼럼 란 따로 있고 기사 란이 따로 있는데 말이다.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인터넷 신문, 방송도 늘어났고 지방 자치제가 시작되면서 각 지방의 미디어 매체들도 생겨났고, 정치 성향에 따라 보수, 진보를 자처하는 신문들도 많이 생겼다. 소위 진보 좌파 성향의 신문들은 자기들이 바라는 목적대로 붓이 가게 돼있기 때문에 fact opinion을 굳이 따질 필요 조차 없으나, 많은 독자를 갖고 있고, 역사가 오래된 주요 신문들도 요즘은 그런 신생 신문들이나 삼류 잡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분석해 볼때, 아마도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젊은 기자들이 많아지다 보니 사실을 보고 분석하는 능력도 떨어지고, 많은 신문이 생기다 보니 전반적으로 기자들의 질도 전보다 많이 떨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신문기사 제목들을 열거해 보았는데, 사실 그대로를 충실히 전달하기 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데 목적이 있는것 같다. 제목이 이렇게 독자들에게 선입감 부터 준다면 어떻게 그 기사가 정확한 사실을 전달했다고 독자들이 믿을 수 있겠는가?  

신문 제목들의 예 ()—이치로 버스코리아타운 돌며 한인들 자극?’; 아직도 못 찾아간 김연아 졸업앨범, ‘수상한데?’; 백골에 약 처방 한 이탈리아 의사들 맞아?; “헬기타고 서울 보라” MB 말에 젊은이들 실소; 강남行 지원했던 경관 “괜히 찍히기만 했네”; 잘나가던 한의학, 허약해졌나.; “또 한일전…차라리 가위바위보 하자“; “경주 △△△ 지지율 더 높아소문 확인되면…; 당당한 캐나다쇠고기 수입안하면 한국 제소“; 남상국사장 한강 투신후에도 절제못한 봉하대군; ‘뚱뚱남서럽게 한 지하철좌석, 9호선 본받아라; “계약위반시…대형기획사가 만든 몰상식 조항

게다가 독자가 많지 않은 인터넷신문들은 가장자리에 야한 여성사진이나 색깔이 강한 많은 그림이나 선전들을 한 페이지에 집어 넣어서, 가끔 회사에서 한국 뉴스를 보려고 열었다가 오해받는 경우도 있어서 정말 인터넷 강국의 신문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LG Xenon cell phone (휴대폰) 이나 삼성 폰같이 한국 휴대폰들의 인기가 대단하고, 한국 가전제품까지 주요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의 매스 미디어 (mass media) 들은 언제면 fact opinion을 구별하는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잔디 깎는 철

여기서는 보통 4월로 접어 들면 여기 저기서 잔디 깎는 기계소리가 주말 아침의 달콤한 늦잠을 방해한다. 보통 일주일만 지나도 상태가 좋은 잔디는 금새 많이 자란다. 그리고 그 잔디 깎는 일은 (lawn mowing) 아빠나 아들들의 몫인데 바쁘거나 여건이 안되면 잔디 깎는 회사에 맡긴다. 그래서 산책을 할때 유심히 관찰을 해보면 어떤 집의 잔디는 꼭 푸른 카펫을 깔아 놓은 것 처럼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또 어떤 집의 잔디는 클로버와 민들레 (여기서는 잔디를 괴롭히는 골치 아픈 풀로 여김) 가 반 이상 덮이고 너무 길게 자라서 마치 정글처럼 된 집도 있다. 그래서 봄만 되면 TV에서 풀 죽이는 약 (weed killer), 잔디 거름 (fertilizer), 풀이 잘 안자라게 하는 약 (weed controller) 등의 선전을 많이 볼 수 있다. 보통 잔디를 깨끗이 가꾼 집은 현관앞도 깨끗해서 아름다운 반면, 잔디가 엉망인 집은 칠한 페인트도 벗겨지고 앞마당도 쓸지 않아서 더럽다. 만약에 이웃집 잔디에 풀이 너무 많으면 그 풀씨앗이 날려서 자기 집으로 넘어 오기 때문에 잔디 관리를 못하는 이웃을 두면 골치가 아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참다 못해서 자기 집 앞마당을 관리 하면서 옆집 잔디도 함께 깎아 준다든지 죽은 꽃이나 풀을 뽑아주는 등 남에게 봉사한다는 좋은 마음으로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에 까다로운 이웃일 경우에는 큰 문제로 발전할수 있다. 왜냐하면 남의 property (소유지)에 주인 허락 없이 침범했기 때문이고 남의 소유물을 함부로 만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인터넷뉴스나 편지 서비스를 친구도 좋아 할것 같아서, 허락 없이 친구의 이메일 주소로도 그 서비스를 신청 했다면, 그 친구는 매일 들어오는 그 이메일이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이민 온지 얼마 안 된 한국 주인이 자기집의 잔디를 깎으면서 옆집 잔디가 긴 걸 보고 양심상 어떻게 우리집것 만 깎고 획 들어가버릴 수가 없지혹은 이렇게 깎아주면 기뻐하겠지하고 허락없이 선의로 깎았는데, 마침 상대방은 개인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앞마당을 예쁘게 단장 하려고 했거나, 잔디의 길이를 좀 길게 깎을려고 생각했는데, 옆집에서 허락 없이 아주 짧게 깎아버렸거나, 엉망으로 대충 깎아 놨다면 이웃에 잘해 줄려고 한 선의가 오히려 서로 말도 안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당연히 그런 상태가 나쁜 잔디를 그냥 둔 이웃이 있으면 HOA (Home Owner Associate) 에 보고를 하고, 그 곳에서 경고 편지를 보내게 되고, 계속 시정이 안 되면 벌금도 감수해야 한다. HOA는 동네를 더 잘 유지 하기 위해서 집과 정원, 도로, 놀이터, 애완동물, 자동차 주차, 등등에 대한 주민의 불만을 받고 시정조치 하며, 그 동네관리를 위해서 매달 일정 금액을 징수하고, 일년 예산도 정하며, 눈을 치우거나 동네 조경을 위한 회사를 선정하는 일도 한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퇴근을 하면서 이번 주말에는 아들 녀석도 한가하니 잔디를 깎으라고 시켜야지 마음 먹고 집에 왔는데 옆집에서 친절하게 잔디를 깎아줬다. 아마도 아들에게 시키면서 우리집것도 깎으라고 했던것 같다. 그런데 우리집 현관을 중심으로 양쪽에 잔디가 대칭으로 되어 있는데 한쪽편 만 깎여 있었다. 보통 잔디를 깎은 후에는 가장자리를 줄로 그으것 처럼 똑바로 쳐주고, 깎여나간 잔디들은 깨끗하게 쓸어줘야 되기 때문에, 주말까지 기다리기에는 보기가 흉해서 결국 피곤함을 무릎쓰고, 저녁도 뒤로 미루고, 안 깎인 반대편의 잔디를 혼자 깎았다. 옆집의 도움이 약간의 시간은 절약될 수 있었지만 왜 부탁도 안 한 일을 해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나 짜증을 내면서도, 직장 다니느라 바쁜 나를 생각해서 깎아 준 선의의 마음을 보고 이해하기로 했다.

올해는 특히 열심히 잔디에 신경을 쓰려고 마음을 먹고, 봄이 오기 시작하면서 mulch (멀취-나무등을 잘게 짤라서 나무나 꽃의 밑둥에 덮어주는 것으로 더운 여름에 수분이 빨리 빠지는것 막는 역할을 하는 것) 를 깔아주고, weed controller를 뿌리고 거름도 줬다. 그래서 올해 우리집 잔디는 다른 집보다 더 진한 초록빛을 띄고 빨리 자라고 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직장 관계로 집에서 먼 주 ()로 이사를 갔고 둘째는 봄이 시작되면서 어깨를 다쳐서 그냥 잔디 깎는 회사의 서비스를 올 봄 부터 받고 있다. 거의 모든 남자들이 하는 일을, 땀 뻘뻘 흘리면서 잔디 기계질을 하는게 싫고, 아무도 살려주지 않는 자존심, 내 스스로라도 살리기 위해서…

말 잘하는 사람들

항상 내가 여기서 놀라는 것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기 표현을 너무나 조리있게 잘 말한다는 것이다. CNN이나 여러 주요 방송들의 대담프로를 보면, 여러명이 제각각 자기 주장들을 논리있게 펼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 직원들이 자기 의견을 조목 조목 아무 꺼리낌없이 잘 말하는 걸 보면서, 감탄을 하게 되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저런 말을 어떻게 감히 할수 있을까 놀라고, 또 그런 말을 해도 참 잘 경청 한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란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 사람들은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거침없이 술술 말을 할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선 어릴때 부터 말을 자유롭게 할수 있는 환경을 가정에서 부터 마련해 줬다는 것이다. 내가 앞서서 언어 문화에 대해서 썼던것 처럼,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상대방을 “you”라고 하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끔씩 외국 영화를 보면 어린 손자와 할아버지, 혹은 부모와 자녀들이 마치 같은 나이의 친구들 처럼 얘기 하는 장면이 나오는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인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많이 하는 ‘show & tell’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애들에게 설명해주면서 자랑할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그러나 동물이나 위험한 물건은 금지된다.) 역시 여러 사람 앞에서 얘기를 잘 할수 있게 훈련 시키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 인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제일 큰 이유는 누가 어떠한 주장을 펼치든 명령 체계로 된 군대가 아닌 이상, 당사자의 마음에 들던지, 안 들던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 때문에, 나이가 많거나 그 쪽 숫자가 더 많다고 윽박지르며 중단시키거나 야유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보면 선천적으로 명랑해서 말도 잘 했을 것 같은데, 여러 사람 앞에만 서면 무릎부터 떨리기 시작하고,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머리가 멍멍 해진다. 머리속에는 말하고 싶은게 많지만, 입으로 조리있게 나오질 않는다. 내가 나를 진단하기에 말을 하기에 앞서서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인것 같다. 우리가 어릴때는 사람들 앞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자기 생각을 좀 주장 할라 치면, ‘좀 점잖게 있어라’, ‘예의를 지켜라’, ‘철 좀 들어라’, ‘어른들 앞에서 까불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라’, ‘아무리 입이 가지러워도 좀 참고 조용해라’, ‘잘 난척 하지 마라’,  여자애가 좀 조용하고 차분해야지’, ‘체면 좀 차려라’, ‘딴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겠니등등 말을 아주 잘하는게 버릇없는 것처럼 여겨졌었다. 그래서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눅부터 들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머리에 그리게 되니 당연히 말을 잘 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잘하라고 보내는 웅변학원들도 하나같이 자기가 생각하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말을 하게끔 가르치기 보다, 쓰여져 있는 글을 외워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의 높낮이를 잘 조절해서 소리지르면 잘 한다고 박수를 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선거에 나오는 한국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으면, 초등학생들의 웅변만도 못 한걸 느낀다.

당연히 애들이 습관적으로 남을 비방하거나 상처주는 말을 하면 고쳐 줘야 하겠지만,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며 합리적이고 논리 정연하게 말을 잘 하는 자식이 있다면, 아무리 부모의 의견이 그것과 달라도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들어줄려고 노력한다면 아이의 연설 잘 하는 재능이 빛을 볼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젊은 연예인들이나 대담 프로 진행자들이 우리 때와는 전혀 다르게 아주 말을 재미있게 잘 하는걸 볼 수 있고, 예전의 웅변학원과는 다른 방식의 스피치 클래스 (speech class) 들도 생겨서 각본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걸 가르치는 것같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과 말,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가 되지않고 진실성이 결여된다면, 아무리 말을 잘해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 결국 그 사람을 신뢰 할수가 없을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만약에 미국에서도 한국 처럼 뚱뚱한 사람이 길을 지나갈때, 야유나 조소를 보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미국 사람들의 비만율이 쬐끔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딸의 첫 브래지어 사주던 날

많은 엄마들이 늙어 갈수록 딸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다행히 내게도 두 아들놈 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막내딸이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중학교 2학년이 되는데, 몇주 전에 모녀가 함께 쇼핑을 하면서 예쁜 무늬가 그려진 브래지어를 몇개 사줬다. 여기 미국 여자 애들은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만 되어도 성숙한 애들을 많이 볼수 있어서, 딸의 친구들을 보면 도저히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벌써 4학년만 되가면, 남녀 학생들 사이에 여러가지 주의할 점들을 가르쳐 준다.

딸 애가 난생 처음 갖는 브래지어에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 올랐다. 우리가 어릴때는 요즘 처럼 보험제도가 잘 돼있어서 개인적으로 종합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건 아주 부자가 아닌 이상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고, 의료 시설도 좋지 않은 시대 였기 때문에, 그저 아프면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는게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체검사를 실시하곤 했었는데, 키와 몸무게를 재고, 치아 검사같은 아주 기본적 검사 외에, 손톱과 발톱, 머리에 이가 있는지 보는 위생검사도 했었다. 또 대변검사도 해서 회충, 촌충, 요충, 편충 등 기생충이 있으면, 구충제를 학교에서 선생님이 직접 보는 앞에서 먹게 하면, 아침도 못 먹고 온 가난한 애들은 그 독한 약에 견디지 못해서 구토를 하고 어지러워서 쓰러지곤 하는것도 보았었다. 그런데 그 때는 모두가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걸로 알았지만, 딸 애를 키우면서 새삼 옛날에 우리 세대가 했던 신체검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나는 다른 애들보다 키가 작고 성장도 빠른 편이 아니었지만 가난해서 학교에 늦게 들어오거나 다른 애들보다 성장이 빨라서 키도 크고 몸이 성숙한 여학생들은 벌써 5, 6학년 때부터 가슴이 나온 애들이 있었다. 그런 친구들은 항상 애들 놀림감이 되었고, 자기가 무슨 죄인인 양 항상 뒷자리에 앉았었고, 대체적으로 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신체검사를 하는 날은 남자와 여자애들 모두 똑 같이 팬티만 입고, 복도에 쭉 줄을 서서 키를 재고, 몸무게를 재고 했었는데, 가슴이 좀 나온 애들은 창피해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줄에 서 있으면 짓궂은 남학생들이 낄낄대며 웃었었는데, 그건 신체검사를 담당하는 남자 선생님들이 하는 행동에 비하면 아주 약과였다. 키를 재는 측정기에 올라서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는 여학생에게 능글 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막대기로 탁탁 치면서손 내려.” 하고 으름장을 주면 순진한 그 아이는 다들 쳐다보는 앞에서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어쩔수 없이 겨우 손을 내리고, 차렷 자세로 키를 재면 애들이 다 ! ” 하고 소리를 질렀던게 기억이 난다.

나는 큰 딸로 오빠, 언니가 없어서 생각하는 것도 어리고 tomboy (말괄량이, 왈가닥 소녀) 같아서 그때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사자인 그 친구들은 얼마나 큰 정신적 상처를 입었을까 상상하니 딸을 가진 엄마로서 마음이 아파왔다. 허울좋은 신체검사라는 이름으로 겨우 키와 몸무게 정도를 재면서 엄청나게 비인간적이고, 미개한 성추행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쳐온다. 신문, TV, 인터넷등의 메스컴을 통해서 듣는 어린 소녀들이 당하는 상상을 초월한 성폭력 기사들을 읽으면서 동생들에게 여자 조카들 (요즘은 남자 애들도 조심해야 하는 세상인것 같다) 항상 조심하게 키우라고 강조에 강조를 하는데, 결국 모든 면에서 morality (도덕성, 윤리성) 가 사라져서 발생하는 현상인것 같아 무척 안스럽다.

빨리 빨리 문화

미국에 온지 얼마가 지난 어느날 수퍼마켓을 가서 필요한 물건들과 함께 한국에서 못 보던 상품들을 시식도 해 볼 겸 몇개를 사서 계산대에 주섬 주섬 올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 뒤에 선 남자가 갑자기 “It’s ok. Don’t rush. Take your time.”(괜찮아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요.) 이러는게 아닌가? “아뿔사!”

내가 한국에 있을때 집 근처에 소형 백화점과 함께 아래층에는 수퍼마켓이 있었는데, 당연히 물건들을 산 후에는 계산대에 아주 신속하고 재빠르게 그 물건들을 척척 올려 놓으면, 나보다 속도가 더 빠른 여점원이 계산을 하는게 당연한 것이었고, 만약에 그 계산 속도가 좀 느리거나 물건에 문제가 있어서 점원과 한 마디라도 하려고 잠시라도 지체가 되면,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평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일반적인 현상에 익숙해진 내가, 무엇에 쫓기는 사람 마냥, 나도 모르게 부랴 부랴 물건들은 계산대 위에 올려 놓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은 아마도 자기가 나를 빨리 빨리 계산 하라고 다그치는 것처럼 내가 오해한다고 생각 했든지, 아니면 작은 아시안 여자가 높은 계산대 위에 작은 한 손으로 잡기에는 큰 물건들을 (여기서의 일반 사이즈가 한국에서 치면 large size) 헐레벌떡 올려놓는 모습이 너무 안스럽게 보였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그렇게 좀 어색한 상황 아래라면 애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라든가, 애들 데리러 가야 된다든가, 영어로 둘러 댈 수도 있었을텐데, 당시에는 영어가 금방 나오지도 않아서 혼자만 얼굴이 빨개져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으니

무의식적이고 습관처럼 나타나는 나의 재빠른 행동이 이런 인상을 남에게 준다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사람들도 나 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남자가 내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여기서도 동양 수퍼마켓들 (거의 한국주인이 운영하는 대형 매장들)의 계산대 풍경은 한국과 같이 아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아주 많이 다른것 같지 않다.

그 후 나는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되도록이면 모든 걸 천천히 여유있게 하려고천천히 말하고, 걷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운전하고, 등등노력을 하고 있지만 천성이 급하고, 어릴때 부터 그런 빨리 빨리 문화가 몸에 밴것을 나이가 다 들어서 한번에 고친다는게 쉽지는 않다.

요즘 처럼 거의 모든게 인터넷으로 이루어지고 초고속으로 가는 세상에서, 빨리 빨리문화는 많은 장점을 주고 그 덕에 한국이 많은 발전을 하고 있지만, 가끔씩은 일부러라도 느긋하게, 천천히 하루 일과를 지낸다면 아마도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다.

음식문화 (3)

예전에 남편의 선배 부부들과 웨스트버지니아 (West Virginia) 를 3일 정도 다녀 온 적이 있었다. 출발 하기전에 여러 사항들에 대해서 서로 의논하면서 이번 여행은 부인들도 좀 편하게 모든 식사는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모두들 만장일치로 찬성을 했다. 아침 일찍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했지만, 적지 않은 일행이라서, 점심도 먹고, 휴게소도 들리고 하다 보니, 꼬박 하루가 다 걸려서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일정에 맞추어서 관광도 하고 점심도 먹고 모든일이 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다음날은 날씨도 안좋은대다 일정이 빨리 끝나서, 조금 일찍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부터 저녁으로 무얼 먹느냐로 의견들이 분분해 지면서, 남편들이 미국 음식을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면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식당에서 모든 끼니를 해결하기로 한 결정을 순진하게 믿고 있었던 나는 이런 불만들이 터져나오자 황당해 하면서, 이런 오지에서 어떻게 한국 처럼 산기슭에서 닭도리탕이나 매운탕 등을 제공하는 식당들이 어디에 있다고 저렇게들 불평들을 하고 있을까 하면서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한 부인이 먼저 우리가 쌀과 김치를 좀 갖고 왔는데 누가 좀 더 음식이 있으면 함께 만들어서 저녁으로 나누어 먹자고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와 동시에 나만 제외한 모든 부인들이 우리도 쌀과 밑반찬이 있다, 밥통도 갖고 왔다, 컵라면도 있다 면서 다들 제각각 한국 음식을 잔득 미리 준비하고 왔던 것이었다. 아마도 미국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에 다시 자기들 방으로 돌아가서는 따로 한국 음식을 식구끼리 먹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갖고 온 반찬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으니, 전형적인 경상도 스타일의 남편들이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어느 정도 알것 같았다. 결국 조금 큰 사이즈의 호텔방을 쓰는 한 가족의 방에 모두들 모여서 각자 꾸려온 반찬을 내놓고, 전기 밥통으로 밥을 하고, 컵라면을 국으로 해서 그 많은 일행이 저녁을 먹었는데, 당초에 세운 계획을 고지식하게 믿고 그냥 온 우리 식구는 마치 남의 밥을 훔쳐 먹는 기분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중 한 부인이 내게 마치 큰 교훈을 가르쳐 주듯이 이 엄마는 미국식으로 완전히 식성이 바뀌었나봐. 남편을 좀 생각해서 어느 정도는 한국 음식을 준비해 와야지 어떻게 그냥 올 수 있어? 우리에게서 남편 챙기는 걸 좀 배워야 겠어.” 하는 것이었다. 결국 단체가 정한 결정을 따른 나는 완전히 나쁜 마누라 처럼 돼 버렸고, 애초부터 이런 한국 음식에 대한 희망사항을 건의 조차 하지않고 마치 부인들을 아주 사랑하는 남편들인 척 한 그 남자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화가 났고, 더우기 남편들을 마치 외동아들 처럼 너무나 완벽하게 잘 챙겨주는 그 부인들을 보면서, 언제 이런 아줌마들은 현모양처라는 허울 좋은 틀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동시에 존경해 마지 않았다.

음식문화 (2)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음식문화에 관한 내용은 식사 예절 같은 것이 아니라, 내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관점에서 느끼는 차이를 쓰는 것이다. 식사 예절에 관한 많은 책들이 출판이 되고 잘 알려져서 인지 오히려 한국에서 방문하는 분들이 포도주잔은 이렇게 잡고, 냅킨, 나이프, 포크, 스푼은 이렇게 식탁위에 놓고 하면서, 실지 여기 사는 사람들보다 더 잘 아는 것같다. 여기도 부모가 잘 가르쳐주지 않으면 격식을 갖춘 식사예절은 잘 모르는것 같다. 그래서 그런 학생이나 어른들을 위해, 좋은 호텔 식당같은 곳에서 현장 학습을 하면서 가르쳐주는 하루, 이틀정도의 교육 프로그램도 있는걸 봤다.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회사 안에 직원의 복지시설을 위해서 싱크대와 함께 냉장고, 얼음을 만드는 기계, 그리고 생수가 설치돼 있는데 좀 더 규모가 큰 회사에는 스낵류나 콜라, 쥬스등을 사먹을 수있게 자동판매기 (vending machine) 까지 설치해 준다. 거의 모든 종류가 1달러 미만인데 내게는 아주 달거나 짜서, 심심풀이로 한 봉지를 다 먹고 나면 나중에 물을 엄청나게 마시게 되는 스낵들로 꽉 채우져있다. 보통 여러가지 맛의 potato chips (감자칩), pretzel (프레첼: 매듭 모양의 과자),  쵸코렛, 캔디, 젤리, 카라멜, 도너츠, 카라멜이나 쵸코렛이 씌워진 팝콘, 설탕과 소금이 묻혀진 땅콩, 술안주로 안성마춤인 beef jerky (쇠고기 말린것)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아침에 기계안에 꽉 채워졌던 스낵들이 퇴근 할때 쯤 되면 아주 단 종류부터 많이 비어있고 제일 심심한 맛의 pretzel 만 남아있는다. 그리고 콜라와 사이다, 쥬스를 파는 기계도 diet cola (다이어트 콜라) 보다 설탕이 많이 들어있는 음료수부터 다 떨어졌다는 빨간 불이 켜진다. 그래서 요즘 학교에서는 그런 고열량의 설탕이 많이든 스낵이나 음료 기계 대신 생수를 뽑아 먹는 기계로 대체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내가 보기에 어릴때 부터 아주 달고 짠맛에 길들여진 미국인들이 그 입맛을 하루 아침에 바꿀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도 소아 당뇨병 환자가 증가한다고 하지만 여기처럼 많은 어린이들이 당뇨병으로 고생을 하고 심지어는 좋은 대학교를 들어갔지만 부모와 떨어져서 기숙사에서 혼자 지내면서 잘 음식조절을 못해서 다시 당뇨병 증세가 심해져서 휴학을 한 대학생도 있다.

식당에 가서 dessert (후식) 메뉴를 봐도 대부분이 쵸코렛과 카라멜이 줄줄 케익에서 흘러내리고, 치즈케익 위에도 빨간 딸기시럽을 덮고, 아이스크림 위에도 단 쿠키와 설탕에 절여진 딸기와 앵두, 바나나가 장식되어있다. 후식으로 과일이나 떡, 커피를 기대하면 큰 오산이고, 더우기 한국에서 먹던 케잌과 비슷한 맛이겠지 하고 시켰다가는 다 먹지도 못하고, 주문한 돈이 아까워 집으로 싸가도 냉장고에 박혀있다가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갈 정도로 모든 스낵이 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나 역시 이제는 점심이나 저녁을 먹은 후에는 맛있는 케잌 한 조각을 먹고 싶으니 나도 점점 이런 입맛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같다. 당뇨병이 심해서 발이나 다리를 자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서도 단 음식을 먹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 몰래 먹는 환자가 있다니 설탕도 drug (마약) 목록에 넣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우스게 생각도 해본다. 

음식문화 (1)

각 나라들의 문화 차이에 대해서 대화를 할때 가장 먼저 주제가 되는 것이 음식일 것이다. 어릴때부터 자라면서 먹던 음식들이 입에 배고, 과학자들 말대로 뇌에 영구히 인식이 된다는데, 내가 보기에 나이가 들수록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것 같다. 여기 어떤 임신한 엄마는 입덧으로 무지 고생을 하다가 어릴 때 고향에서 먹었던 향토 음식을 한국에서 친정어머니가 보내줘서 먹고 입덧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음식이 인간의 신체 뿐 만이 아니라 정신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 한국에서 여행 온 한 식구가 호텔에 묵으면서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몸은 피곤하고 배는 고픈데 아무리 둘러봐도 모두 버터와 치즈냄새가 진동하는 음식점 밖에 없어서 한국 식당이 그 근처에 있는지 내게 전화로 애타게 물어 봤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올림픽같은 큰 스포츠 행사를 하면 현지에 사는 교포들이 한국 음식을 (특히 김치) 제공해주든지, 아예 비행기로 공수를 하는 경우를 신문에서 읽었었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여행객은 주방 시설이 안된 호텔에서, 가지고 온 밑반찬과 오징어, 김치, 라면 등을 몰래 만들어 먹다가 냄새가 밖으로 세어나가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이삼일 정도의 여행은 한국 음식 없이 지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좀 긴 여정 일때는 미리 호텔 예약을 할때 되도록 주방이 있는 곳을 고른다. 그렇다고 호텔에서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는 바로 못 해먹어도 미리 만들어간 음식을 전자렌지 (microwave oven) 정도로는 데워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호텔을 찾지 못할때는 가까운 고속도로상의 휴게소나 공원을 일부터 찾아서 한국식사를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곤 한다. 워낙 고속도로 주변에 운전자와 그들의 애완동물을 위한 휴게시설이 식탁과 함께 잘 설치돼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나를 짜증나게 하는게 하나 더 있는데, 밥을 먹을 시간이 되서 배는 고파오는데 고속도로 출입구나 휴게소 몇마일을 앞두고 설치되어 있는 대형 칼라 광고판들은 온통 햄버거, 피자, 스파게티, Taco (타코: 멕시코 음식), 도너츠, 아이스크림등으로 장식 되어있다. 치즈와 피자소스가 녹아서 흘러내리고 고기가 알맛게 구워져서 바베큐 소스가 함께 얹어져 있고 도너츠위에 하얀 설탕으로 만들어진 크림과 쵸코렛, 그리고 무지개 색깔의 깨처럼 작은 사탕들로 잔득 발라져 있는 유혹적인 광고들을 보면서 미국인들은 입에서 군침이 도는지 앞에 가는 차들이 하나씩 하나씩 앞다투어 그 장소를 향해서 빠져나간다. 그러나 나는 배가 고파옴과 동시에 위()에서 느끼한 고기 냄새가 올라오면서 머리가 아파온다. 여기 와서 첫 일년 동안은 그런 음식을 맛 있다고 잘 먹었었는데 점점 살아가는 년수가 길어질수록 예전에 먹었던 음식들을 찾게 된다. 우리애들도 첫째는 8살에 여기에 와서 그런지 어른이 될수록 한국 음식을 선호하고, 둘째는 18개월때 동생이 생기는 바람에 일찍부터 유아원엘 갔는데, 거기서 점심으로 주는 미국 음식에 길들여지다 보니 미국 음식을 더 좋아하고, 세째는 어릴때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국 종류의 한국 음식을 자주 먹였더니 어느 음식이나 다 좋아한다. 한국 운동 선수들이 해외 경기에서 우승을 해서 인터뷰를 할때 김치를 먹고 힘을 내서 이겼다는 소리가 그냥 우스개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신발을 신는다? 입는다?

내가 미국에 살면서 좀 이해하기 어려웠던게 있다면 그건 집에서 신을 신고, 침대에서 조차 신을 신는다는 것이었다. 제일 처음에 여기 와서 자리를 잡을때 전화, 케이블 TV, 가스등 여러가지를 설치하려면 그쪽 서비스맨이 방문을 해야 되는데, 그럴때 작업용 장화나 운동화를 신고 집안으로 들어오면, 당장 벗으라고도 할수 없어서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아주 많이 달라져서 보통 집안에 들어올때 일회용 덧버선을 장화같은 위에 신고 들어오든지, 신발을 벗든지, 아니면 먼저 주인에게 그냥 신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한다. 어떤 경우에 그냥 신발을 벗어도 된다고 했다가 오히려 서비스맨의 발냄새를 감수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보통 연한색의 카펫을 집안에 까는데 진흙이나 잘 빠지지않는 기름같은 종류가 신발에 붙어있다 카펫에 묻으면 그걸 지우는 수고가 만만치 않다. 너무 얼룩이 심하면 비싼 돈을 주고 카펫청소를 해야 한다. 예전에 한국 신문에서 어느나라 대통령인지 수상인지, 절같은 곳을 방문해서 신발을 벗어야 됐는데 양말에 빵구가 났었다는 가십 (gossip) 기사를 보았다. 여기서는 보통 아침에 신발을 신고 나가면 저녁에 자기 방에 들어 갈때까지 신발을 벗지 않는게 일반적이라서 그 사람도 양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여기서는 양말에 빵구난게 큰 흉거리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운전을 하다보면 밖으로 보이는 현관앞에 신발들이 쭉 널려있는 집들이 가끔씩 보이는데 그런 집은 보통 아시안이나 인도, 중동쪽 사람들이 사는 집인줄 알면 된다. 그리고 TV에서 집단장하는 프로를 봐도 보통 모든 미국인들은 신발장이 옷장과 함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신발을 신는다하는데 여기서는 ‘wear (입는다)’ 라고 하고 모자도 쓴다‘wear’ 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즉 신발이나 모자를 의복의 한부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여성에게 신발을 벗으시죠.” 하는 것은 옷을 벗으시죠.” 하는 것과 똑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도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한번은 난생 처음으로 이웃에 사는 두 미국인 부부를 초대했었는데 한 부부는 현관앞에 신발들이 많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눈치껏 신발을 벗었는데 다른 한 부부는 그냥 들어왔다. 그래서 내 남편이 신발을 벗어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그 부인이 좀 화난 표정으로 신발을 벗어서 현관으로 획하고 던지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특별히 저녁에 초대받아서 잘 차려입은데다 신발도 예쁜 하이힐로 신고 왔는데 벗으라고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우리는신발을 신고 들어가면 엄청난 실례를 저지르는 거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게 에티켓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본의 아니게 우리가 저녁은 초대해 놓고 그 부인에게는 실례를 저지른 셈이 된것이다.

그리고 옷장 정리를 잘 안하는 우리애들이 집안 여기 저기 옷이나 양말을 아무데다 벗어 던져 놓듯이 미국애들도 신발을 방 여기 저기에 벗어 던져 놓는것을 똑같다고 생각하면 좀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그래서 미장원에서 파마를 할때 한국 여성잡지책을 읽다 보면 유명인사 부부들의 가정탐방같은 인터뷰 기사가 가족사진과 함께 많이 나오는데 예전에는 내눈에 띄지 않았던게 어색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건 사진의 식구들 모두가 옷을 멋지게 차려입었는데 맨발이거나 (여름사진이면) 양말만 신어서 멋진옷이 구색이 맞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신발까지 옷에 맞추어서 wear(입는다) 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또 하나 다른 점은 병원에서 특별한 검진을 위해서 의사의 지시로 양말까지 벗고 가운만 걸쳐야 되는 상황이 아닌 한, 일반 검진을 위해 진찰대 위에 올라갈때 내가 알기로는 신발을 신고 눕든지 앉든지 한다간호사도 아닌 내가 직접 다른 사람들 진찰실을 어떻게 들어가 봐서 알겠는가? 항상 그게 궁금했었는데, 마침 TV에서 어머니날 특집으로 임신한 젊은 엄마들이 새 아기를 낳는 기쁜 순간들을 다룬 프로를 보다 보니 여성들이 초음파를 하든지 검진을 할때 신발을 신고 진찰대에 올라가는게 아닌가? 미국 의사들은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한국 의사라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한국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있다든가 기내 슬러퍼를 신고 돌아 다니면 흉하다고 하는 외국인들이 있을 수 있으나 결국 그런것도 개인적으로 바라보는 문화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지 잘잘못을 따질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Ladies First

Ladies First: 여성이 우선 (차례 따위에서 여성을 우대할 때 쓰인다)

우리 엄마는 미국에 오시면 마치 여왕이 된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고 하신다. 왜냐하면 식당에서나, 교회에서나, 엘리베이터를 탈때나, 수퍼마켓을 갈때나, 남자들이 엄마를 위해서 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기 남자들은 Ladies First가 몸에 배서 아주 멀리 뒤에 떨어져서 걸어오지 않는 한, 보통 남자가 문을 잡아 기다려주고, 엘리베이터를 탈때도 여성을 먼저 타게 해준다. 노인분들을 한국 처럼 만큼은 공경을 하지 않더라도, 특히 나이가 드신 여성들에게는 많은 남성들이 문을 잘 열어주기 때문에, 엄마는 그런 서비스를 받으면 너무 감탄을 하신다. 처음에는 너무 황송해서 땡큐” “땡큐를 연발 했었지만, 몇번 미국을 오시다 보니 나중에는 습관이 되셔서 땡큐우~” 하시면서 진짜 여왕 처럼 지나가신다. 그러나 Ladies First 가 알게 모르게 몸에 밴 내가 요즘에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거나,  어느 건물을 들어가면서 저 사람이 문을 열어 주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냥 후다닥 먼저 가버리는 남자들을 가끔씩 보게 된다.

지난 15년간 IT (Information Technology 정보통신) 분야가 많이 발달되면서 그 분야에 경험이 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 자리를 잡으면서 백인이 주를 이루던 여기 버지나아도, 한국인이나 중국인은 말할것도 없고, 이제는 어디를 가나 인도, 중동쪽 이민자들도 심심찮게 보게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리고 당연히 문을 잡아주겠거니 했던 내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먼저 문을 획 닫고 가버리는 남자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불쾌해지걸 느끼면서 내가 언제 부터 그런 호사스러운 서비스를 기대하게 됐지? 하고 웃는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그런 이민자들도 여기서 어느정도 살아가면서 그런 Ladies First 잘 지켜준다.

내가 아는 어느 아줌마가 남편과 함께 한국을 다녀와서 하는 말씀 왈, 어디서나 그렇게 문을 잘 열어주던 남편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문이 어디있어? 그냥 혼자 획 하고 나가더라. 그래서 따졌더니 이러는 거야.  남자 위신도 있지. 어떻게 당신이 걸어 올때까지 내가 문을 잡고 서 있어.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데 쪽 팔리쟎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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