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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동문서답

큰 아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가 잡초와의 전쟁을 주제로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고 했더니 잡채와의 전쟁이라구요?” 하는게 아닌가?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잡채가 아니고 잡초하고 다시 강조하며 말했더니 잡초가 뭐드라?” 하는데 할 말을 잊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에 왔지만, 엄마의 극성으로 6학년 국어책까지 공부를 시켜서, 비록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왔지만, 읽고 말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대학 4년 동안 집을 떠난 날이 많은데다 직장 때문에 거의 식구들과 자주 한국말을 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한자뜻을 가진 단어들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면서 아들의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어느날 한국에서 오신 엄마도 뵙고 미국도 구경할 겸, 캐나다에 유학 온 조카가 우리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새로운 한국 소식도 듣고 오래된 추억 얘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옛날에는 초가집들이 많아서 집에 벼룩도 많고, 학생들의 머리에 이도 많아서, 학교에서 이검사도 하고 DDT라는 약도 몸에 뿌리는 시대를 살았지만, 아무 탈 없이 잘 지낸다는 말을 하는 도중에, 큰 아들이 대뜸 벼룩이 왜 뛰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네가 어렸을때는 이도 없었고, 벼룩은 더 더욱 보기도 힘들었는데 어떻게 너가 벼룩을 아니? 하고 물었더니 계속 자기가 잘 안다면서 벼룩은 뛰는게 아니고 뚝 떨어진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우리는 너무 의아해 하며, 빈대는 톡톡 튀고, 벼룩은 팔짝 팔짝 뛴다면서 서로 설전을 벌이는데 갑자기 큰아들이 답답했는지 영어로 어떻게 thunder (thunderbolt, 벼락, 번개)가 뛰나요? 떨어지죠.” 하는게 아닌가?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엄마, 조카, 그리고 나는 동시에 어느새 벼룩이 벼락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니 하면서 배꼽 빠질 정도로 웃었다그렇게 웃고있는 우리를 멀끔히 쳐다만 보고 있는 아들에게 얘는 이제까지 동문서답 (東問西答)을 했네.” 했더니 아들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동문서답만큼은 내가 잘 알아요.” 하는 거였다. 그래서 “잘 아는게 뭔데?” 하고 되 물으니, 큰아들이 하는 말 동문서답허준이가 쓴 책이쟎아요.” 그 순간 우리 모두는 거의 기절할 정도로 마루 위에 뒹굴면서 웃고 또 웃고 했었다.

 

당시에 한국 TV에서 드라마 허준이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었고, 우리 식구들도 한국 비디오 가게에서 매주 마다 빌려다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그 허준이 불쌍한 민초들을 위해서 병을 고쳐주는 장면이,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아들에게는 아주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는지, 그 허준이라는 사람이 마치 예수님 같네요 까지 말하곤 했었다. 그래서 허준이가 지은 동의보감 (東醫寶鑑)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어려운 한글 단어들에 더욱 서툴은 아래 두 녀석은 어려워얼려, ‘기특해기도해등등 많은 단어들을 잘못 이해하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애들 못지않게 대화를 하는 도중에 잘못 알아듣는 영어 단어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우리 엄마는 미주 라디오 방송에서 ‘emission test (에미션 테스트-자동차 배기가스검사)를 공짜로 해준다는 걸 임신 테스트를 공짜로 해준다는 소리로 듣기도 했었다.

 

내가 이중언어를 쓰면서 나름대로 내린 견론은, 맨 처음 머리에 입력된 영어 단어와 나중에 배운 영어가 함께 짬뽕이 돼서 입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 적은 놓은 것과 같이, 완전히 웃기는 단어로 재 탄생하게 되는데, 큰 아들의 에피소드에 버금갈 정도로 웃기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영화 E.T.에 나왔던 미국 여배우 Drew Barrymore Berry Drewmore, 미국 틴에이저 여배우 Miley Cyrus Ciley Myrus, American Idol의 참가자 Danny Gokey Danny Gecko, 인기 TV 프로인 American Gladiators American Alligators로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게 되는데, 아마도 strawberry, blueberry, silo, alligator 라는 단어들을 먼저 접했기 때문이고, 애완용 leopard gecko (도마뱀 일종)를 돌보면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실수를 하는게 아닌가 싶다. 허수아비라는 단어 scarecrow를 crow keeper라고 하거나 fish out of water를 fish out of bucket 이라고 까지 했었으니까. 아무튼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 임에는 틀림 없지만 단어와 문장을 자주 입에 오르내리면서 익숙하게 만들면, 어느 정도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수형, 복수형

영어로 말할 때 쉽게 실수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단수형과 복수형의 단어를 정확하게 구별해서 써야 되는데  생각처럼 쉽게 입에서 나오지가 않는다. 한국어 처럼 단순히 단어 뒤에 ‘…만 붙이는 것 처럼, 영어도 복잡한 복수형이 아닌 이상, 단어 뒤에 ‘s’ 만 붙이는게 왜 어려울까 의아해 할 수 있다. knife knives, foot feet 처럼 단어 자체가 변할 때는 오히려 실수를 자주 하지 않지만, 간단히 ‘s’ 만 뒤에 붙여서 복수가 되는 단어들을 사용할 때는 나도 모르게 ‘s’ 없이 말할 때가 많다. 한국어로 사탕을 샀니?’, ‘사과를 사거라.’, ‘종이를 사야지.’ 하고 말을 하지 사탕들을 샀니?’ ‘사과들을 사거라.’ ‘종이들을 사야지.’ 하고 을 붙여서 말을 하는 경우는, 정확하게 갯수나 량을 강조 할 때 빼고는 드물다. 그래서 영어를 쓸때, candies (캔디즈~), apples (애플스~), papers (페이퍼스~) 하면서 단어 끝까지 정확히 ‘s’ 발음을 해야하는데, 잘 염두해 두지 않으면 ‘s’를 가끔 잊고 말을 하게 된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건, 돈에 대해서는 한푼의 양보도 없고, 절대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는, 철저한 자본주의 문화가 언어에도 영향을 줘서 한개냐, 두개 이상이냐를 정확히 구분해서 쓰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한국에서 재래 시장같은 곳을 가면, 마음씨 좋은 상점 아줌마들이 인상이 좋고 말도 이쁘게 하면 덤으로 더 받을 수 있고, 물건값을 안 깎아주면 에누리가 없다고 하고, 됫박으로 파는 물건을 살 때도 한 줌, 혹은 수북히 넣어달라든지, 설이나 제사가 끝나면 주인이 먹을 음식이 부족해도 손님들에겐 듬뿍 싸주는 정 많은 한국의 문화가 정확히 갯수를 따지는 걸 야박하고 인정머리 없다고 보기 때문에, 정확하게 단수와 복수 개념이 크게 강조되지 않는 이유도 있을것이다.

 

내가 즐겨보는 경제 전문 채널인 CNBC의 일반인들을 위한 경제상담을 들으면서 놀라는 것은 대학을 졸업한 자식들이 독립을 안하고 부모와 한 집에서 살게 되면 방세를 받고 (당연히 부모가 생활비를 대주는 것은 없고), 은퇴한 부모와 함께 살게되면 부모에게서 방세나 전기, 수도같은 관리비를 받고, 부부 사이에도 결혼 전에 개인 재산과 관련된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그런 상담 프로들을 보면서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생각하고 쓰는지를 알게 된다. 게다가 1달러 미만인 백분의 일 단위의 센트 (cent)까지 상품 가격표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한국 물건값에 동그라미가 몇개 들어간 숫자들과 큰 차이를 느끼게 된다. 아들 친구들이 놀러 왔을때 가끔 피자를 시켜주면 어떤 애들은 자기가 먹을 피자 몇조각 값를 내게 지불하려는 애들도 있고, 회사에서 우표 한장을 빌리면서 당연히 44센트를 갚는다. 그러나 여기도 다 사람사는 곳이라 치매 걸린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돌보는 자식들도 많이 있고엄청난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부자들도 많지만, 돈에 관한 개념은 기본적으로 서로 많이 다른 것 같다.

 

수퍼마켓을 가서 똑같은 물건 20개를 사면 계산원이 하나씩 20번 스캔을 한다거나, 아주 간단한 뺄셈, 덧셈도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으면 계산을 못하는 점원들이 많지만, 고등학생때 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고 세금 보고도 스스로 하면서 돈이 무엇인지 실지 몸으로 배우고 경험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학교에서 인기있는 게임이나 스포츠카드들을 서로 돈으로 거래하기도 하고 (원칙적으로 학교에서는 상거래를 못하게 함), 용돈을 벌기 위해서 동네 어귀에서 레몬 쥬스 (lemonade)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이제 동네 곳곳의 수영장들이 개장을 해서, 인명구조 면허 (lifeguard license)를 딴 고등학생들이 뙤약볕에서 일을 하거나, 여름방학을 맞아 젊은 남녀 대학생들이 식당이나 수퍼마켓에서 일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데, 나는 식당에서 특별히 대학생 웨이터의 서비스를 받게 되면, 기특한 마음에 팁을 좀 더 주고 나오게 된다.

잡초와의 전쟁 (2)

나는 4년이 넘게 거의 매일 바지만 입었었는데, 드디어 지난 가을 부터 치마를 다시 입기 시작했다. 무슨 종교적인 이유나 특별한 흉터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고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많은 모기에 물렸고, 특히 다리에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간지러워 수시로 벅벅 긁다보니 딱지가 생겼고, 그게 떨어져 나간 자리가 동그란 갈색으로 남아서, 치마를 입으면 마치 피부병 걸린 여자 처럼 오해 받게 돼 버렸다.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 오기전에 살던 집을 팔려고 부동산에 내 놓은 후, 되도록 빨리 팔리게 하려고 집 안밖을 잘 손질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한 이웃과 얘기 하던 도중, 잔디에 좋은 제초제를 뿌려주면 매일 잡초 뽑는 수고를 한결 덜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마치 엄청난 비밀을 찾아낸 양 기뻐서, 그 제초제와 똑같은 상품을 바로 사다가 그 날 오후에 골고루 잔디 위에다 뿌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났다. 그 때 마침 엄마가 한국에서 방문을 하셔서, 바쁜 나를 위해 잔디 관리를 잘 해주고 계셨는데, 엄마가 생각하시기에 그 제초제를 뿌린 후 물을 뿌려주면 약 효과가 더 빨리 전달되서 좋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제초제의 사용방법을 자세히 읽지 않아서 엄마와 같은 생각을 했다. 제초제도 뿌리고 물도 준 후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에 커피 한잔을 하면서 앞 정원을 바라보는 순간 완전히 기절 초풍 할뻔 했다. 잔디가 완전히 갈색으로 변해서 깡그리 죽어있는게 아닌가? 보통 잔디를 수시로 잘 가꾸고 관리하는 여기 아빠들은, 제초제 뿌리기 전에 다음날 날씨가 어떨지 반드시 체크하는게 기본 상식이란 걸 나는 완전히 몰랐던 것이다. 제초제를 뿌린 후 바로 비가 오거나 물을 줘 버리면 약이 물에 녹으면서 잡초 뿐만이 아니라 건강한 잔디까지 동시에 약을 흡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잔디가 다 죽었으니 누가 그런 집을 사려고 하겠는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부랴 부랴 Home Depot (홈 디포) 라는 모든 건축자재와 관련된 물품을 판매하는 스토어에 가서, 잔디 (sod­ - 잔디를 모판 위에 자라게 한 후 마치 카펫처럼 일정한 크기로 잘라서 파는 것)를 사다가 깔아야 됐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새 잔디를 죽은 잔디위에 그냥 덮을 수가 없고, 그 죽은 잔디를 먼저 뽑아야 되는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그 동안 정원가꾸는 정보를 많이 접해서, 뿌리 깊은 잡초나 덩굴더미, 필요없는 작은 나무난 꽃들을 뽑는 간단한 기계를 사거나 빌려야 겠다는 생각을 금새 했을텐데, 그때는 그런 지식도 부족했고, 정원 크기도 작아서, 그저 괭이같은 기구로 쉽게 뽑을 수 있겠거니 짐작하고 엄마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보통 꽃이나 작은 나무가 죽으면 뿌리가 약해져서 뽑기가 쉬운데 죽은 잔디는 그 뿌리가 흙과 함께 엉겨 붙어서 쉽게 제거되지 않는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아예 땅 바닥에 주저 앉아서, 도끼 모양의 괭이로 잔디 뿌리들을 내리쳐서 자르고,그렇게 한 꺼풀씩 벗겨낸 죽은 잔디를 긴 가지 치는 가위로 적당히 잘라내고, 또 다시 뿌리를 끊고 잘라 내고를 반복하면서 쌓아놓은 죽은 잔디가 마치 오래된 누런 카펫을 조각내서 쌓은것 같았다. 그리고 그 죽은 잔디 걷어내는 일을 끝낸 후, 쓰레기로 버릴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 작은 수레를 빌려다 거기에 담고, 집 뒷쪽에 있는 숲으로 나르기를 몇 십번 반복했었다.

 

한 번의 실수로 생각지 못한 엄청난 노동을 하게 됐는데, 그 날 저녁 엄마와 내가 몸살이 난것은 당연 하거니와 다리와 발 그리고 엉덩이까지 독한 풀모기들에게 엄청나게 뜯긴 걸 알게 되었다. 너무 독한 한여름의 풀모기들이라서, 모기 물린데 바르는 약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바지만 입고 다니다 드디어 치마를 입고 출근을 한 날, Where were your legs?” “Did you have legs?” “Wow! You look great!” 등등 회사 직원들의 기분 좋은 인사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정말 아는게 힘이고 무식하면 평생 고생이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웃어 본다.

잡초와의 전쟁 (1)

올해는 특히 아침에 출근을 하거나 퇴근을 할때, 집앞의 잔디를 쳐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왜냐하면 잡초가 거의 없고, 잔디가 아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잔디 깎아주는 회사의 서비스비도 저렴한데다 (아마도 경기가 안좋아서 저렴하게 오퍼를 준 것 같다) 깔끔하고  마음에 꼭 들게 처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해마다 제초제 (weed killer)와 거름 (fertilizer)주는 시기를 놓쳐서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잡초가 정신없이 잔디위에 뻗어 나가고, 노란 민들레가 나도 이쁘게 봐 달라고 여기 저기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면, 결국 잡초 뽑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해서, 늦 가을까지 기다리곤 했었다. 왜냐하면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잡초같은 나쁜 풀들이 힘을 잃고, 겨울이 되면 자라는걸 멈춘다. 그러면 그때 weed killer를 뿌려서 죽인후 잔디씨를 다시 심곤 했었다. 그리고 반드시 다가오는 봄에는 때를 놓치지 말고, 제초제와 거름을 주자고 다짐했었는데, 마침내 이번 봄은 성공적으로 실행했다.

 

우리집 잔디 상태가 좋다는걸 기뻐하는 또 한 분이 계신데, 다름이 아니고 우리 엄마이시다. 딸 식구들을 보려고 몇 번 미국에 오실때 마다, 아침, 저녁으로 풀을 뽑고 물을 주시고, 가꾸시니, 동네에서 제일 잘 다듬어진 앞뜰이 우리집이었다. 그런데 엄마께서 한국으로 가시자 마자, 주인 잃은 강아지 처럼, 잔디 상태가 손 볼 여유없이 금새 나빠지는 걸 보면서, 엄마께서 베풀어 주신 노고와 사랑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엄마께서는 우리집 앞의 정원을 보시고, 옛날 친정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더 애착을 갖고 가꾸시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집을 옮겨가야 했는데, 향나무, 전나무, 목련, 문주란, 장미, 글라디올러스, 민들레, 선인장 등 많은 종류의 꽃이 만발했던 정원도, 고스란히 남겨둔채 떠나야 했던 엄마의 마음 아픈 상처를,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준게 아니었나 싶다. 내 기억에 엄마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머리수선을 두르고, 넓은 정원의 풀을 혼자 다 뽑으셨는데, 일이 다 끝나면 땀에 흠뻑 젖으셨었다. 그때는 그저 공부 만 하고, 학교 가기 바빠서 그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지만, 막상 여기서 정원을 관리하다 보니, 얼마나 엄마의 수고가 힘든 것이었는지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엄마와 국제전화 통화를 할때 마다 “잔디의 잡초를 수시로 뽑아라.” “진달래는 잘 피었니?” “나무 가지치기를  해서 모양을 좀 잘 살려라.” 하시며 여러가지를 당부 하신다. 그런데 올해는 엄마의 바람대로 때를 놓치지 않고, 아직까지는 정원을 잘 관리를 하고 있다. 그저 저녁에 잔디에 물을 줄 때, 모기에 많이 뜯겨서 치마를 못 입고 다니는 불상사가 없게, 모기 퇴치 스프레이이나 다리에 골고루 뿌린 후에 물을 줘야 겠다.

운좋은 해, 고달픈 해

어느새 5월도 반이 지나갔다. 올 봄은 유난히 비가 오는 날이 많고, 평균기온이 예년보다 낮아서 아침 저녁으로 아직까지 쌀쌀하다. 그러나 겨울동안 덮었던 담요들을 부지런히 모두 빨아서 정리를 했기 때문에 그저 잠옷안에 옷 하나를 더 껴입고 자고 있다. 보통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인 Memorial Day (현충일)가 시작되는 주말쯤이 되면, 수영복만 걸치거나 비치(beach)타올을 허리에 둘둘 말아서, 동네를 걸어다니는 어린이와 젊은애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른들도 수영복만 걸치고 애들을 유모차에 태워서 즐겁게 걷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드디어 동네 수영장들이 열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5월은 일년 중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에는 특히 5월에 공휴일이 많이 있어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학생들은 달력위의 빨간 날짜를 보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월급을 줘야하는 회사 운영자나 수주 마감일이 다가오는 기업들은, 휴일 많은 달이 반갑지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해는 주말과 휴일이 겹친 긴 연휴가 있는 운 좋은 해와, 또 어떤해는 주말을 다 피해가는 고달픈 해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공휴일은 특별히 올해 처럼 대통령 취임식이 있는 해 (4년에 한번) 를 제외하고는, 모든 해의 휴일 수가 일정하다. 독립기념일 (7 4), 새해 첫날 (1 1), 재향군인의날 (11 11), 그리고 크리스마스 (12 25)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제정한 휴일들이 몇번째 주, 무슨 요일로 정해져 있으며, 그렇게 특별한 날짜로 정해진 휴일이 토요일이면, 대신 금요일을 놀고, 일요일과 겹치게 되면, 월요일을 놀기 때문이다. 주정부 공무원, 우체국, 은행, 학교, 정부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회사들은 거의 모두 쉬지만, 개인사업을 하는 회사들은 사장의 제량에 따라 쉬게 된다. 여기 공휴일 정하는 법을 보면서 미국인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고 하는데 동감을 한다. 아마도 임금이나 세금과 관련된 법규나 집행이 까다롭다 보니, 휴일이 하루 많아지거나 적어지면, 그 영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도 그런 방법으로 휴일을 정한다면 아주 합리적이고 서로 공평할 것 같다. 그러면서 참고로 미국의 휴일을 적어보았다.

정부 제정 휴일 (: 2009)

·   New Years Day: 1 1

·   Martin Luther King Day: 1 19 (1월 세째 월요일)

·   Inauguration Day (대통령 취임식): 1 20 ( 4년 마다)

·   Presidents Day (혹은Presidents Day is also Washingtons Birthday-워싱턴 대통령의 생일날): 2 16 (2월 세째 월요일)

·   Memorial Day (현충일): 5 25 (5월 마지막 월요일)

·   Independence Day (독립기념일): 7 4

·   Labor Day (노동절): 9 7 (9월 첫째 월요일)

·   Columbus Day (콜럼버스의 날-미국 대륙을 발견한 사람): 10 12 (10월 둘째 월요일)

·   Veterans Day (재향군인의 날): 11 11

·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 11 26 (11월 넷째 목요일)

·   Christmas Day (성탄절): 12 25

봄이 좋은 이유

내가 중, 고등학교때는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으면, 당연히 가을과 겨울이라고 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대답이 봄으로 바뀌었다. 우선 여름은 너무 더워서 싫고, 가을은 곱게 물든 단풍을 보는게 좋고, 떨어지는 낙옆을 치우는 것도 싫지 않지만, 이제 또 한해가 가겠구나 싶으니 나이 탓인지 우울해진다. 그리고 겨울은 한마디로 너무 추워서 싫다. 눈이 많이 오면 따뜻한 커피 한잔을 하면서 눈 감상을 하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눈이 많이 와서 집 앞뒤 마당의 눈을 치워야 한다면, 그 다음 몇일간은 몸살할 각오를 해야 한다. 예전에는 겨울에 양말을 신는 건, 내 사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추위를 타는 친구들이 나를 보면 혀를 내두르곤 했었는데, 그것도 옛말이 되어 가는지 몇해 전부터 겨울에 양말을 신기 시작했다. 몇해 전 여름에 플로리다를 갔을때, 밖에 몇분만 서있어도 체온을 넘는 엄청난 더위로 땀이 줄줄 흘러내려서, 어떻게 이런 주()에서 살 수 있나 싶었는데, 이제는 왜 노인들이 은퇴 한 후에, 겨울에도 따뜻한 플로리다 (Florida)나 아리조나 (Arizona) 같은 주로 이사를 가는지,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처음 내가 정착한 버지니아 (Virginia)가 사철이 분명하고, 서울 날씨 처럼 봄인가 하면 여름이고, 가을인가 하면 금새 겨울이 되지 않고, 봄과 가을이 꼭박 석달씩 가서 참 좋아 했었는데, 이제는 석달 중 아주 추운 두 달 정도도 지겨워서, 은퇴를 하면 다른 주로 이사를 가볼까 하고 가끔씩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플로리다에는 수퍼마켓, 편의점, 식당, 놀이동산, 휴게소 등에서 일을 하는 노인들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만큼 거주민 중에 노인 인구 비율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봄 날씨가 그저 따뜻해서 봄을 좋아 하는 것은 둘째 이유이고, 내가 정말 봄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겨울동안 마치 죽은것 같던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에서 연두색 잎파리가 푸릇푸릇 가득하게 돗아 나는걸 보고, 또 하루 하루 그 연두색이 진한 청록색 잎으로 바뀌면서 숲을 가득 채워가는 엄청난 자연의 신비와 강한 생명력이, 내게 많은 새 희망과 힘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파트촌에 살면서 절실히 느껴보지 못한 자연의 위대함을 보면서 진정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게 의심의 여지가 없다.

Fact (사실) 와 Opinion (의견)

인터넷이 발달 되면서 어떠한 정보들도 거의 다 얻을 수 있고, 신문구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서 중요한 사건, 사고, 큰 이슈화된 기사들을 읽을 수 있어서, 나는 미국 뉴스 외에도 한국에서 주로 봤던 신문들의 인터넷 사이트를 수시로 방문한다. 오랫동안 두 나라의 신문 기사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 신문들의 기사들은 제목부터가 너무 감정적이고 사실전달 능력이 부족하며, 가장 문제점은 기사를 쓰는 기자가 fact (사실) opinion (의견, 견해) 을 철저하게 구별하지 않고 개인 칼럼 처럼 기사를 쓴다는 것이다. 기자의 역할은 일어난 사건, 사고에 대해서 있는 사실만을 정확하고 간단 명료하게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제일의 의무인데, 기사가 아닌 칼럼이나 비평이 아닌가 혼동을 일으키는 기사가 너무 많다. 당연히 신문에는 칼럼 란 따로 있고 기사 란이 따로 있는데 말이다.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인터넷 신문, 방송도 늘어났고 지방 자치제가 시작되면서 각 지방의 미디어 매체들도 생겨났고, 정치 성향에 따라 보수, 진보를 자처하는 신문들도 많이 생겼다. 소위 진보 좌파 성향의 신문들은 자기들이 바라는 목적대로 붓이 가게 돼있기 때문에 fact opinion을 굳이 따질 필요 조차 없으나, 많은 독자를 갖고 있고, 역사가 오래된 주요 신문들도 요즘은 그런 신생 신문들이나 삼류 잡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분석해 볼때, 아마도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젊은 기자들이 많아지다 보니 사실을 보고 분석하는 능력도 떨어지고, 많은 신문이 생기다 보니 전반적으로 기자들의 질도 전보다 많이 떨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신문기사 제목들을 열거해 보았는데, 사실 그대로를 충실히 전달하기 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데 목적이 있는것 같다. 제목이 이렇게 독자들에게 선입감 부터 준다면 어떻게 그 기사가 정확한 사실을 전달했다고 독자들이 믿을 수 있겠는가?  

신문 제목들의 예 ()—이치로 버스코리아타운 돌며 한인들 자극?’; 아직도 못 찾아간 김연아 졸업앨범, ‘수상한데?’; 백골에 약 처방 한 이탈리아 의사들 맞아?; “헬기타고 서울 보라” MB 말에 젊은이들 실소; 강남行 지원했던 경관 “괜히 찍히기만 했네”; 잘나가던 한의학, 허약해졌나.; “또 한일전…차라리 가위바위보 하자“; “경주 △△△ 지지율 더 높아소문 확인되면…; 당당한 캐나다쇠고기 수입안하면 한국 제소“; 남상국사장 한강 투신후에도 절제못한 봉하대군; ‘뚱뚱남서럽게 한 지하철좌석, 9호선 본받아라; “계약위반시…대형기획사가 만든 몰상식 조항

게다가 독자가 많지 않은 인터넷신문들은 가장자리에 야한 여성사진이나 색깔이 강한 많은 그림이나 선전들을 한 페이지에 집어 넣어서, 가끔 회사에서 한국 뉴스를 보려고 열었다가 오해받는 경우도 있어서 정말 인터넷 강국의 신문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LG Xenon cell phone (휴대폰) 이나 삼성 폰같이 한국 휴대폰들의 인기가 대단하고, 한국 가전제품까지 주요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의 매스 미디어 (mass media) 들은 언제면 fact opinion을 구별하는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잔디 깎는 철

여기서는 보통 4월로 접어 들면 여기 저기서 잔디 깎는 기계소리가 주말 아침의 달콤한 늦잠을 방해한다. 보통 일주일만 지나도 상태가 좋은 잔디는 금새 많이 자란다. 그리고 그 잔디 깎는 일은 (lawn mowing) 아빠나 아들들의 몫인데 바쁘거나 여건이 안되면 잔디 깎는 회사에 맡긴다. 그래서 산책을 할때 유심히 관찰을 해보면 어떤 집의 잔디는 꼭 푸른 카펫을 깔아 놓은 것 처럼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또 어떤 집의 잔디는 클로버와 민들레 (여기서는 잔디를 괴롭히는 골치 아픈 풀로 여김) 가 반 이상 덮이고 너무 길게 자라서 마치 정글처럼 된 집도 있다. 그래서 봄만 되면 TV에서 풀 죽이는 약 (weed killer), 잔디 거름 (fertilizer), 풀이 잘 안자라게 하는 약 (weed controller) 등의 선전을 많이 볼 수 있다. 보통 잔디를 깨끗이 가꾼 집은 현관앞도 깨끗해서 아름다운 반면, 잔디가 엉망인 집은 칠한 페인트도 벗겨지고 앞마당도 쓸지 않아서 더럽다. 만약에 이웃집 잔디에 풀이 너무 많으면 그 풀씨앗이 날려서 자기 집으로 넘어 오기 때문에 잔디 관리를 못하는 이웃을 두면 골치가 아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참다 못해서 자기 집 앞마당을 관리 하면서 옆집 잔디도 함께 깎아 준다든지 죽은 꽃이나 풀을 뽑아주는 등 남에게 봉사한다는 좋은 마음으로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에 까다로운 이웃일 경우에는 큰 문제로 발전할수 있다. 왜냐하면 남의 property (소유지)에 주인 허락 없이 침범했기 때문이고 남의 소유물을 함부로 만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인터넷뉴스나 편지 서비스를 친구도 좋아 할것 같아서, 허락 없이 친구의 이메일 주소로도 그 서비스를 신청 했다면, 그 친구는 매일 들어오는 그 이메일이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이민 온지 얼마 안 된 한국 주인이 자기집의 잔디를 깎으면서 옆집 잔디가 긴 걸 보고 양심상 어떻게 우리집것 만 깎고 획 들어가버릴 수가 없지혹은 이렇게 깎아주면 기뻐하겠지하고 허락없이 선의로 깎았는데, 마침 상대방은 개인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앞마당을 예쁘게 단장 하려고 했거나, 잔디의 길이를 좀 길게 깎을려고 생각했는데, 옆집에서 허락 없이 아주 짧게 깎아버렸거나, 엉망으로 대충 깎아 놨다면 이웃에 잘해 줄려고 한 선의가 오히려 서로 말도 안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당연히 그런 상태가 나쁜 잔디를 그냥 둔 이웃이 있으면 HOA (Home Owner Associate) 에 보고를 하고, 그 곳에서 경고 편지를 보내게 되고, 계속 시정이 안 되면 벌금도 감수해야 한다. HOA는 동네를 더 잘 유지 하기 위해서 집과 정원, 도로, 놀이터, 애완동물, 자동차 주차, 등등에 대한 주민의 불만을 받고 시정조치 하며, 그 동네관리를 위해서 매달 일정 금액을 징수하고, 일년 예산도 정하며, 눈을 치우거나 동네 조경을 위한 회사를 선정하는 일도 한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퇴근을 하면서 이번 주말에는 아들 녀석도 한가하니 잔디를 깎으라고 시켜야지 마음 먹고 집에 왔는데 옆집에서 친절하게 잔디를 깎아줬다. 아마도 아들에게 시키면서 우리집것도 깎으라고 했던것 같다. 그런데 우리집 현관을 중심으로 양쪽에 잔디가 대칭으로 되어 있는데 한쪽편 만 깎여 있었다. 보통 잔디를 깎은 후에는 가장자리를 줄로 그으것 처럼 똑바로 쳐주고, 깎여나간 잔디들은 깨끗하게 쓸어줘야 되기 때문에, 주말까지 기다리기에는 보기가 흉해서 결국 피곤함을 무릎쓰고, 저녁도 뒤로 미루고, 안 깎인 반대편의 잔디를 혼자 깎았다. 옆집의 도움이 약간의 시간은 절약될 수 있었지만 왜 부탁도 안 한 일을 해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나 짜증을 내면서도, 직장 다니느라 바쁜 나를 생각해서 깎아 준 선의의 마음을 보고 이해하기로 했다.

올해는 특히 열심히 잔디에 신경을 쓰려고 마음을 먹고, 봄이 오기 시작하면서 mulch (멀취-나무등을 잘게 짤라서 나무나 꽃의 밑둥에 덮어주는 것으로 더운 여름에 수분이 빨리 빠지는것 막는 역할을 하는 것) 를 깔아주고, weed controller를 뿌리고 거름도 줬다. 그래서 올해 우리집 잔디는 다른 집보다 더 진한 초록빛을 띄고 빨리 자라고 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직장 관계로 집에서 먼 주 ()로 이사를 갔고 둘째는 봄이 시작되면서 어깨를 다쳐서 그냥 잔디 깎는 회사의 서비스를 올 봄 부터 받고 있다. 거의 모든 남자들이 하는 일을, 땀 뻘뻘 흘리면서 잔디 기계질을 하는게 싫고, 아무도 살려주지 않는 자존심, 내 스스로라도 살리기 위해서…

말 잘하는 사람들

항상 내가 여기서 놀라는 것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기 표현을 너무나 조리있게 잘 말한다는 것이다. CNN이나 여러 주요 방송들의 대담프로를 보면, 여러명이 제각각 자기 주장들을 논리있게 펼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 직원들이 자기 의견을 조목 조목 아무 꺼리낌없이 잘 말하는 걸 보면서, 감탄을 하게 되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저런 말을 어떻게 감히 할수 있을까 놀라고, 또 그런 말을 해도 참 잘 경청 한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란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 사람들은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거침없이 술술 말을 할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선 어릴때 부터 말을 자유롭게 할수 있는 환경을 가정에서 부터 마련해 줬다는 것이다. 내가 앞서서 언어 문화에 대해서 썼던것 처럼,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상대방을 “you”라고 하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끔씩 외국 영화를 보면 어린 손자와 할아버지, 혹은 부모와 자녀들이 마치 같은 나이의 친구들 처럼 얘기 하는 장면이 나오는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인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많이 하는 ‘show & tell’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애들에게 설명해주면서 자랑할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그러나 동물이나 위험한 물건은 금지된다.) 역시 여러 사람 앞에서 얘기를 잘 할수 있게 훈련 시키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 인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제일 큰 이유는 누가 어떠한 주장을 펼치든 명령 체계로 된 군대가 아닌 이상, 당사자의 마음에 들던지, 안 들던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 때문에, 나이가 많거나 그 쪽 숫자가 더 많다고 윽박지르며 중단시키거나 야유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보면 선천적으로 명랑해서 말도 잘 했을 것 같은데, 여러 사람 앞에만 서면 무릎부터 떨리기 시작하고,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머리가 멍멍 해진다. 머리속에는 말하고 싶은게 많지만, 입으로 조리있게 나오질 않는다. 내가 나를 진단하기에 말을 하기에 앞서서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인것 같다. 우리가 어릴때는 사람들 앞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자기 생각을 좀 주장 할라 치면, ‘좀 점잖게 있어라’, ‘예의를 지켜라’, ‘철 좀 들어라’, ‘어른들 앞에서 까불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라’, ‘아무리 입이 가지러워도 좀 참고 조용해라’, ‘잘 난척 하지 마라’,  여자애가 좀 조용하고 차분해야지’, ‘체면 좀 차려라’, ‘딴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겠니등등 말을 아주 잘하는게 버릇없는 것처럼 여겨졌었다. 그래서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눅부터 들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머리에 그리게 되니 당연히 말을 잘 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잘하라고 보내는 웅변학원들도 하나같이 자기가 생각하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말을 하게끔 가르치기 보다, 쓰여져 있는 글을 외워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의 높낮이를 잘 조절해서 소리지르면 잘 한다고 박수를 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선거에 나오는 한국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으면, 초등학생들의 웅변만도 못 한걸 느낀다.

당연히 애들이 습관적으로 남을 비방하거나 상처주는 말을 하면 고쳐 줘야 하겠지만,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며 합리적이고 논리 정연하게 말을 잘 하는 자식이 있다면, 아무리 부모의 의견이 그것과 달라도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들어줄려고 노력한다면 아이의 연설 잘 하는 재능이 빛을 볼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젊은 연예인들이나 대담 프로 진행자들이 우리 때와는 전혀 다르게 아주 말을 재미있게 잘 하는걸 볼 수 있고, 예전의 웅변학원과는 다른 방식의 스피치 클래스 (speech class) 들도 생겨서 각본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걸 가르치는 것같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과 말,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가 되지않고 진실성이 결여된다면, 아무리 말을 잘해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 결국 그 사람을 신뢰 할수가 없을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만약에 미국에서도 한국 처럼 뚱뚱한 사람이 길을 지나갈때, 야유나 조소를 보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미국 사람들의 비만율이 쬐끔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딸의 첫 브래지어 사주던 날

많은 엄마들이 늙어 갈수록 딸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다행히 내게도 두 아들놈 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막내딸이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중학교 2학년이 되는데, 몇주 전에 모녀가 함께 쇼핑을 하면서 예쁜 무늬가 그려진 브래지어를 몇개 사줬다. 여기 미국 여자 애들은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만 되어도 성숙한 애들을 많이 볼수 있어서, 딸의 친구들을 보면 도저히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벌써 4학년만 되가면, 남녀 학생들 사이에 여러가지 주의할 점들을 가르쳐 준다.

딸 애가 난생 처음 갖는 브래지어에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 올랐다. 우리가 어릴때는 요즘 처럼 보험제도가 잘 돼있어서 개인적으로 종합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건 아주 부자가 아닌 이상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고, 의료 시설도 좋지 않은 시대 였기 때문에, 그저 아프면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는게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체검사를 실시하곤 했었는데, 키와 몸무게를 재고, 치아 검사같은 아주 기본적 검사 외에, 손톱과 발톱, 머리에 이가 있는지 보는 위생검사도 했었다. 또 대변검사도 해서 회충, 촌충, 요충, 편충 등 기생충이 있으면, 구충제를 학교에서 선생님이 직접 보는 앞에서 먹게 하면, 아침도 못 먹고 온 가난한 애들은 그 독한 약에 견디지 못해서 구토를 하고 어지러워서 쓰러지곤 하는것도 보았었다. 그런데 그 때는 모두가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걸로 알았지만, 딸 애를 키우면서 새삼 옛날에 우리 세대가 했던 신체검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나는 다른 애들보다 키가 작고 성장도 빠른 편이 아니었지만 가난해서 학교에 늦게 들어오거나 다른 애들보다 성장이 빨라서 키도 크고 몸이 성숙한 여학생들은 벌써 5, 6학년 때부터 가슴이 나온 애들이 있었다. 그런 친구들은 항상 애들 놀림감이 되었고, 자기가 무슨 죄인인 양 항상 뒷자리에 앉았었고, 대체적으로 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신체검사를 하는 날은 남자와 여자애들 모두 똑 같이 팬티만 입고, 복도에 쭉 줄을 서서 키를 재고, 몸무게를 재고 했었는데, 가슴이 좀 나온 애들은 창피해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줄에 서 있으면 짓궂은 남학생들이 낄낄대며 웃었었는데, 그건 신체검사를 담당하는 남자 선생님들이 하는 행동에 비하면 아주 약과였다. 키를 재는 측정기에 올라서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는 여학생에게 능글 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막대기로 탁탁 치면서손 내려.” 하고 으름장을 주면 순진한 그 아이는 다들 쳐다보는 앞에서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어쩔수 없이 겨우 손을 내리고, 차렷 자세로 키를 재면 애들이 다 ! ” 하고 소리를 질렀던게 기억이 난다.

나는 큰 딸로 오빠, 언니가 없어서 생각하는 것도 어리고 tomboy (말괄량이, 왈가닥 소녀) 같아서 그때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사자인 그 친구들은 얼마나 큰 정신적 상처를 입었을까 상상하니 딸을 가진 엄마로서 마음이 아파왔다. 허울좋은 신체검사라는 이름으로 겨우 키와 몸무게 정도를 재면서 엄청나게 비인간적이고, 미개한 성추행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쳐온다. 신문, TV, 인터넷등의 메스컴을 통해서 듣는 어린 소녀들이 당하는 상상을 초월한 성폭력 기사들을 읽으면서 동생들에게 여자 조카들 (요즘은 남자 애들도 조심해야 하는 세상인것 같다) 항상 조심하게 키우라고 강조에 강조를 하는데, 결국 모든 면에서 morality (도덕성, 윤리성) 가 사라져서 발생하는 현상인것 같아 무척 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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